우리나라 경제가 전형적인 수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진단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가운데, 반도체를 필두로 경기를 떠받쳐온 수출은 9월 들어서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반도체는 대호황 사이클이 곧 종료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고, 자동차는 미국의 관세 부과를 앞두고 대대적인 ‘물량 밀어내기 수출’에 나선데 따른 일시적인 증가란 분석이 나온다.
우리나라 ‘수출 경제’를 이끌어온 주력산업 가운데 조선업은 장기 불황의 늪에서 좀체 헤어나지 못하고, 디스플레이는 글로벌 공급과잉에 따른 큰 폭의 가격 하락으로 팔수록 손해를 보는 처지인데다, 철강은 미국과 유럽의 보복 관세로 고전하고 있다. 반도체와 자동차의 수출 동향이 전체 산업 경기 흐름을 판가름하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11일 관세청에 따르면, 9월 1~10일 우리나라 총 수출액은 140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8% 증가했다. 올 들어 수출을 이끌어온 반도체(37.8%·전년동기대비)·석유제품(41.1%)이 여전히 높은 증가율을 유지한 가운데, 승용차 수출(23.5%)도 급증해 눈길을 끈다. 올 들어 7월까지 혹독한 부진을 겪어온 현대·기아차 등 국산 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8월 이후 ‘뜻밖에도’ 증가세로 돌아섰다. <한겨레>가 통상당국에 확인한 결과, 9월 1~10일 우리 자동차의 미국 수출은 3억2백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66.5%나 증가했다. 지난 8월(1~20일)에도 국산 자동차 수출은 4억1천만달러로 22.5% 증가했다. 올 들어 미국시장 자동차 수출은 1월 -4.7%, 2월 -39.3%, 3월 -24.3%, 4월 -17.6%, 5월 -15.9%, 6월 -10.5%, 7월 -13.1% 등 거의 매달 지난해 동기 대비 두자릿수 감소를 보였다. 올 들어 미국시장에서 추세적 판매 감소를 보여온 자동차부품도 9월 들어 10일까지 1억2500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11.4% 증가했다. 지난 7월 5억4천만달러(10.2%), 8월(1~20일) 2억6천만달러(12.3%)에 이어 확연히 증가세로 반전된 모습이다.
이와 관련해 통상당국 고위 관계자는 10일 <한겨레>와 만나 “미국 행정부가 최근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에서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부과 조사와 관련해 멕시코와 자동차(및 부품) 쿼터 부과(수입물량제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기아차가 미국시장에 사전에 밀어내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시장에서의 판매 물량이 증가세로 급반전한 배경에는, 미국이 한국에도 232조에 근거한 수입제한 조처를 쿼터방식으로 발동할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그 이전에 좀더 싼 값으로 팔거나 미국 현지 재고물량을 늘리기 위한 대대적인 ‘물량 밀어내기’가 있다는 얘기다. 수입 쿼터가 조만간 현실화하면 미국시장 자동차 수출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우려된다.
수출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는 반도체도 가격 호황 수퍼사이클 종료가 임박하고 있다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중에서 수요가 가장 많은 디램(DDR4 4Gb·512M×8·2133MHz 기준) 가격은 2016년 12월 2.3달러에서 올해 1~4월 4.5~4.9달러까지 치솟은 뒤 8월에는 3.8달러로 내려갔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고 있는 반도체의 약 66.7%(2017년)가 중국(39.5%)·홍콩(27.2%)으로 수출된다.
가장 큰 변수는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높인다’는 목표 아래 반도체를 육성해온 중국이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올 연말 낸드플래시를 시작으로 내년 초 메모리 반도체 양산을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본다. 통상당국 관계자는 “조만간 중국의 양산이 시작되면 전세계적인 공급과잉이 일어나면서 가격이 떨어지게 될 터인데, 특히 중국이 국내 수요를 자국 업체 생산물량으로 충족할 가능성이 크고, 이에 따라 삼성전자·에스케이하이닉스의 생산물량 과잉이 더 심각해져 가격도 대폭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디램의 호황 사이클 종료가 임박했다는 신호를 업계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7월 반도체 제조용 기계설비 투자가 1년 전보다 39.6%나 감소했다. 디램 공급과잉이 예상되자 삼성전자가 투자를 계획보다 축소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전자·에스케이(SK)하이닉스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점유율은 74.5%에 이르고, 지난 7월 기준 반도체 수출액(103억달러)은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20.0%에 달한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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