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청 대기업의 지휘·통솔 아래 가치사슬 전 과정에 전속적으로 묶인 협력업체들이 시장 제품화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온 기존 캐치업 산업발전단계는 이제 거의 종료되고 있다.”
장지상(62) 산업연구원 원장(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은 19일 서울 양재동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회의실에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조선·자동차·철강 등 제조업의 등뼈를 이루는 주력산업 경쟁력이 약화 추세에 있는 요인은 ‘산업 생태계’ 시각에서 봐야 한다며 “그동안 중소 부품업체의 혁신역량을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원청 대기업을 정점으로 중소 부품업체들이 내부 계열사로든 외부 협력업체로든 전속적으로 포섭된 수직계열화 체제의 강점이 사라지고 있으며, ‘캐치업 이후’ 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으로 등장해야 할 중소 부품업체의 기술·혁신 역량이 지체되면서 주력산업마다 엄중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서 제품을 내놓으면 우리 기업이 발빠른 추격자로 나서 모방하면서 성능을 개량한 값싼 제품을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하는 속도전이 캐치업 단계에서의 경쟁력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에 없던 ‘최초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후발국 중국이 무섭게 추격해오고 있어, 모방에서 창조 단계로 이행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휴대폰 기기의 금형을 떠서 콘셉트와 도면을 내려보내면 부품업체들이 이를 받아 불량률을 낮추며 일사불란하게 만들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중소 부품·협력업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연구개발하는 혁신역량이 경쟁력의 관건이다.” 우리 주력산업에 켜진 침체 경고등은, 완성업체의 성장 정체와 중소 부품업체의 혁신 정체가 부른 ‘생산체제의 허약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장 원장은 “요즘 세계시장에서 제품 경쟁구도는 개별 기업간 다툼을 넘어 해당 제품에 연관된 가치사슬 전반에 걸친 산업 생태계 차원의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 및 초연결 사회에서는 상품 기획에서부터 부품생산, 판매까지 가치사슬의 전 과정이 동시 연결되면서 이뤄지기 때문에 재벌 대기업의 인적 및 조직적 역량뿐 아니라 수많은 협력기업의 생산성과 혁신이 함께 강화돼야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중소 협력업체의 혁신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는 수직계열화 체제는 더 이상 경쟁력을 지속할 수 없게 됐다”며 “공정경제·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이라는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세 바퀴 모두 공통적으로 중소·벤처·스타트업 육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래야 주력산업 생태계 전반의 동력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산에서의 기초 체력 부실은 자동차산업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장 원장은 “과거 수입산 부품을 국내산으로 대체하는 과정에서 낙수효과도 일어났고, 납품단가 후려치기같은 압박으로 부품업체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비록 낮았지만, 완성차 업체가 성장하면서 납품물량이 꾸준히 증가한 덕에 협력업체도 버티면서 총매출·총이익은 성장할 수 있었다”며 대기업에 전속으로 포섭된 중소기업일수록 시장에서 독립적으로 생산·판매해온 업체보다 수익성이 더 좋았던 측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최근 완성차 업체마다 내수·수출에서 동반 부진에 빠져들면서 물량조차 감소해 부품협력업체의 기반 자체가 위협받는 처지에 당면해 있다”고 말했다. 납품단가뿐 아니라 물량 감소마저 겹치는 이중고로 기존 자동차산업 성장체체가 한계에 직면하고 있는 셈이다. 올들어 8월까지 국내 자동차 생산은 260만7천대로 전년동기대비 7.1% 감소했고, 수출 역시 158만3천대(262억9천만달러)로 7.8% 감소했다.
규제 완화에 대해 장 원장은 “여러 기술이 융합되는 시대에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과 제품화가 자꾸만 일어나고 있다. 예전의 기술적 조건 아래 만들어진 규제들은 전향적이고 합리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특히 여러 영역의 진입규제는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진입규제는 대부분 단지 기존 진입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과의 산업협력은 “초기부터 해볼만한 것”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협력을 꼽았다. 북한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인 편이고, 태양광 등 소규모 분산형 에너지 협력은 북한 농촌이나 취약계층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는 인도적 성격도 띨 수 있어 유엔 대북 경제제재의 예외로 인정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