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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엄마와 사회인 중 하나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꿈”

등록 2018-10-01 18:19수정 2018-10-02 17:19

[HERI-서울연구원 공동기획] ‘We Change’ ③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
아내, 엄마, 딸, 대표…“나는 그냥 조성실”
육아·출산 등 문제 고민하러 모였다가
혐오 표현까지 고민 넓힌 단체로 성장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정치하는 엄마들’은 특권학교폐지 촛불시민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사진. 조성실 공동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정치하는 엄마들’은 특권학교폐지 촛불시민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사진. 조성실 공동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86년생 조성실입니다.”

자기소개를 부탁하니 소박한 답변이 돌아왔다. 직함이 아닌 존재 자체로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서란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 지역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업주부 어머니의 딸, 직장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사회인 등…. 무수히 다양한 이름으로 이루어진 ‘86년생 조성실’에게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짧지만 단단한 자기소개처럼, 작지만 큰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의 공동대표다.

정치하는 엄마들은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2017년 한 해 동안 <한겨레> 토요판에 ‘장하나의 엄마정치’란 꼭지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진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시작됐다.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를 비로소 깨닫게 된 엄마들의 목소리가 모이더니, 이내 오프라인 모임으로, 40일 만에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다. 고작 1년 반을 바라보는 짧은 역사의 회원들의 ‘되는 데까지 참여’로 움직이는 느슨한 조직인데도 정치하는 엄마들이 보여준 행보는 남다르다. ▲칼퇴근법 ▲정기감사·특별감사에 적발된 유치원 및 어린이집 명단공개 행정소송 등 굵직한 이슈들에 목소리를 내 왔다. 육아·출산·여성과 관련된 이슈가 생길 때마다 언론과 각종 단체에서 ‘한 말씀’과 참석을 요청할 정도로, 확실한 존재감을 가진 단체로 성장했다.

“엄마라고 다 같은 건 아냐”…다른 점을 존중하기

‘맘충’. 이 땅의 수많은 엄마들이 몰상식한 개인이나 집단으로 쉽게 낙인찍히고 매도되던 때, 정치하는 엄마들은 “육아와 출산은 개인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다”라며 단숨에 공론장의 분위기를 바꿔나갔다. 굳이 거창한 분석이나 이론 없이도 구체적인 삶의 영역에서 터져나온 당사자들의 목소리만으로 세상에 용기 있게 맞섰다.

하지만 정작 정치하는 엄마들의 진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건 내부다. “엄마들이라고 다 같지 않거든요. 우린 서로 다른 이야기를 터놓고 해요.” 처음엔 엄마라는 이유로 모였는데, 차이가 드러났다. 전업맘(전업주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 취업맘(일을 하는 엄마)의 차이는 물론, 같은 취업맘이나 전업맘 사이에도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이 있었다. 뿐만 아니다. ‘아빠를 집으로 돌려보내 주세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하자는 의견이 나온 어느 회의에서는, “저는 싱글맘인데요” 라고 발언하는 사람도 있었다. ‘엄마’는 서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이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됐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정치하는 엄마들은 품이 넓은 단체가 됐다. 당장 아이를 키우지 않더라도 ‘언젠간 육아와 출산을 할 것’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거나 사회적으로 기대받는 여성이나 아빠들에 이어 비혼 남성까지 참여하게 됐다. 내게 당연한 말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우고 나니 회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목소리를 내는 영역도 ‘혐오표현금지법 제정 촉구’등으로 넓어졌다. 사회적 단절, 차별, 혐오 섞인 시선은 물론 사랑과 지지까지…. 우리 사회에서 여자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해 온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모여 사회의 다양한 구석을 비추는 렌즈가 된 셈이다.

경력단절과 사회적 소외 고민하던 시절

단체는 빛나는 성취를 이뤘지만, 조 대표의 일상은 변함 없다. 다른 모든 사람처럼 지난한 힘겨루기와 반짝이는 찰나가 이어질 뿐이다. 오히려 체력적으로는 전보다 더 힘들어졌다. 두 아이를 키우며 단체 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회의는 물론 기자회견, 각종 언론 인터뷰를 다니느라 평균 수면 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다. 그런데도 얼굴이 밝다. 그를 뛰게 만드는 원동력이 뭘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았어요.” 가부장적이지 않은 남자를 만나 평등한 부부관계를 꾸리면 육아도 그토록 힘들지는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 남편을 만나 임신을 서둘렀는데, 육아휴직이 가능한 직장을 다니면서도 고민은 깊어만 갔다. 입덧이 심해 결국 직장을 떠났다. 전업주부로 첫 아이를 키울 때만 해도, 자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박사과정을 다니던 남편이 논문을 미루고 육아를 함께 했다. 둘째가 태어나고 경력 단절이 6년에 가까워지자 서서히 두려움이 몰려왔다. ‘사회적 자아의 종언’. 당시 조 대표의 눈앞에 매 순간 떠오르던 문장이다.

이때 만난 정치하는 엄마들은 조 대표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사회와의 끈을 이어갈 길을 열어줬다. 답답했고, 어딘가 말할 곳이 필요했다. 내가 겪는 문제를 터놓고 말하니, 비슷하지만 다른 결의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사회에서 영원히 도태되지 않을까 무서웠는데, 일하는 엄마한테서도 같은 몫의 어려움이 보였다. “엄마가 일터로 나간 만큼 아빠가 가정으로 오거나 지역사회가 함께 양육하는 공동체가 필요하죠.”

조 대표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모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라고 말했다. 조성실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조 대표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도, 사회적으로 활동하는 것도 모두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라고 말했다. 조성실 대표 페이스북 갈무리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일이 맞습니다”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엄마라면 으레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할 법도 한데, 조 대표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가장 소중한 순간으로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타던 때’를 꼽는다. 첫 아이가 처음 자전거를 타고 스스로 골목을 돌던 날, 남편이 그 모습을 찍어 조 대표에게 전송했다. “우리의 처음을 기록한 걸 축하해.” 조 대표가 남편에게 보낸 답장이다. “아이가 주는 기쁨과 사랑이 정말 커요. 누군가의 영원한 처음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고, 큰 행복이잖아요. 그런데 꼭 육아와 사회생활 중에 선택해야만 하는 걸까요?” 조 대표는 ‘엄마 됨’을 거세하고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 선배들과 사회성을 희생해 엄마로 남은 사람들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꿈은 큰 결심 없이도 부모가 되기를 결정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환경을 만들려고 이렇게 뛰는 거죠.”

인터뷰 끝자락에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줄 말이 있느냐 물었다. “잠시 생각해 보겠다”며 얼마간 뜸을 들이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 “민폐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혼자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사회가,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일이 맞습니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때로 내 아이의 성장을 놓치기도 했을 조 대표가 스스로에게 수도 없이 던졌을 말이다.

두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 사회적으로 발언하고 활동하고 싶은 활동가, ‘86년생 조성실’ 안의 두 이름은 이제 조화롭게 걷는 법을 배운 듯 보였다. 내 아이와,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자신의 어깨에 조금 더 무거운 짐을 진 채. “저 자신과 아이들을 위한 변화, 당사자인 제가 직접 만들어가야죠.”

박선하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원 s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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