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제징용희생자 유해봉환 국민추모제'가 지난 8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려 참석자들이 제단 위에 놓인 희생자 35위를 향해 묵념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정부가 일본 거대 전범기업들이 만든 복사기, 프린터기 등을 최근 5년간 1510억원 어치를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4일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자료를 보면, 지난 2014년 1월부터 2018년 8월까지 미쓰비시·히타치·스미토모·도시바·후지필름·가와사키 등 일본 전범기업 6곳이 조달청을 통해 정부 각 부처와 국가계약을 맺고 1510억4871만원의 제품을 납품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조 의원은 2013년 국회 국정감사 때도 정부가 2008년부터 2013년 10월까지 6년간 사무기기 1431억원어치를 구매했다고 지적한 바 있는데,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이다.
전범기업이란 일제강점기 때 우리 국민을 강제로 노역에 동원했던 일본기업 중 현재 남아있거나 다른 기업과 흡수·통합된 기업, 전범기업 자본으로 설립된 기업 등을 말한다. 국무총리실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지난 2012년 일본 전범기업 299개를 발표했는데, 조 의원이 조달청 국가조달시스템을 통해 이 명단을 전수 비교 조사했다.
일본 전범기업이 조달청을 통해 정부기관에 납품한 제품들은 복사기, 프린터기, 스캐너, 팩시밀리 등 사무용품이 대다수였고, 이는 국내기업 제품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납품계약금액 규모별로 보면, 히타치가 1242억6317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후지필름(165억897만원), 도시바(68억7269만원), 가와사키(18억8628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또 발전소 관급 수주 현황을 보면, 미쓰비시·히타치·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MHPS)·스미토모·도시바 등 일본 전범기업 5곳이 한국전력 등 우리나라 전력사 5곳에서 지난 5년간 1993억원을 낙찰받은 것으로도 나타났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제작소가 화력발전설비 부문을 떼어내 설립한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즈(MHPS)가 93.4%(1863억원)로 가장 많이 수주했다.
미쓰비시그룹은 양승태 대법원의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배사건에서, 대법원은 그 책임을 인정해놓고도 5년간 결론을 미뤘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해당 소송을 연기하거나 파기하는 대가로 박근혜 청와대로부터 국외에 파견할 법관 자리를 얻어낸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조정식 의원은 “한국인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사과한 적이 없는 미쓰비시그룹(합작사 포함)은 지난 10년간 우리나라 발전소 설비 수주로 총 1조원의 실적을 올렸다”며 “지난 2013년 일본 전범기업의 공공조달 현황 문제를 지적했는데도 개선되지 않는 것은 정부기관의 안일한 역사의식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어 “프린터, 복사기 등 대체 가능한 물품들에 대해서는 국내 중소기업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특단의 대책을 조속히 내놔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조달청은 <한겨레>에 공식 답변을 피했으나, 조 의원 쪽에 “국민 정서는 이해하지만 정부 조달협정상 특정 기업의 입찰 참가 자격을 제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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