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거의 날을 맞아 지난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집 없는 사람들의 달팽이 행진’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이 청와대 방향으로 오체투지를 하고 있다. 1인 가구와 청년 가구는 월세 거주 비율이 가장 높은 등 주거 실태에서 가장 열악한 계층이지만 주거복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6평) 남짓한 반지하 원룸의 보증금 500만원은 이미 몇달 전 모두 까였다. 그러고도 아직 한달 45만원인 월세 160만원이 밀려 있다. “걱정 말고, 월세는 돈이 생기면 내라. 여기 살다가 나중에 집 사서 나가라”고 말해준 집주인이 동수(가명·32)씨는 그저 고맙다. 광주의 한 사립 종합대를 졸업한 동수씨는 3년 전 일거리를 찾아 서울에 왔다. 초반엔 사촌 형 집에서 지냈는데 아무래도 얹혀 지내는 게 불편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 원룸을 얻었다. 본업인 싱크대 설치나 부업인 건설 현장 일용직은 하루 벌이(12만~18만원)로는 괜찮은 편이다. 문제는 일이 있는 날이 고작해야 한달에 보름밖에 안 되고 그나마도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다. 급기야 동수씨는 지난해 말 두달 동안 월세를 못 냈다. 다급한 마음에 일수로 사채를 썼다. 빌린 돈은 200만원, 갚을 돈은 52일 동안 하루 5만원씩 260만원이었다.
돈 갚으라는 독촉 전화는 계속 오는데, 갚을 길도 다음 월세를 낼 길도 막막했다. 수면제와 번개탄을 샀다. 고향인 전남 장흥에 사시는 부모님께 ‘마지막 편지’도 썼다. 그렇게 모든 걸 끝내려고 작정한 순간, 친구가 노름빚으로 고민하다 세상을 떠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 주민센터의 소개를 받아 관악주거복지센터(서울시 위탁 민간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센터의 지원으로 빚을 갚았다. 다시는 사채를 쓰지도,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도 않겠다는 결심도 했다. 하지만 ‘월세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있는 건 여전하다. 마음이 가는 여성이 생길 때, 한때 동호회 활동까지 하며 열심이었던 당구를 치고 싶을 때, 친구를 만나 맛있는 걸 먹으며 수다를 떨고 싶을 때, 동수씨는 이런 생각을 한다. 월세도 못 내는 처지에 무슨. 그리고 자책한다. 이 모든 건 돈을 못 버는 내 잘못이야.
동수씨 같은 1인 가구, 청년 가구는 한국의 주거 실태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통계개발원이 1985~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분석해 곧 발간할 <인구·가구 구조와 주거 특성 변화> 연구보고서를 보면, 2015년 현재 1인 가구의 44%가 월세, 34%가 자가, 16%가 전세에 살고 있다. 전체 가구(자가 56.8%, 전세 15.5%, 월세 23.7%)보다 월세는 20.3%포인트 높지만 자가는 22.8%포인트 낮은 수치다. 49살 이하 1인 가구의 절반 이상이 월세에 살고 있으며, 특히 20~24살은 81.5%, 25~29살은 65%가 월세 거주자다. 대체로 보증금을 마련하기 힘든 이들이 월세를 선택한다는 점, 너무 많은 1인 가구가 월세에 살고 있다는 점에서 1인 가구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볼 수 있다. 전체 주거빈곤율 12%의 갑절에 가까운 1인 청년가구의 주거빈곤율(22.6%. 서울 1인 청년가구는 37.2%)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동수씨의 자책처럼, 이 모든 게 ‘동수씨들’의 잘못일까? 그 책임의 적어도 일부는 1인 가구의 상황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는 주거정책에 있다고 보는 게 온당할 것 같다. 정부는 ‘사각지대 없는 촘촘한 주거복지망’을 강조하며 주거정책의 청사진인 주거복지 로드맵을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지난 7월엔 이를 보강·구체화한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 방안’도 내놨다. 이 방안의 핵심은 신혼부부에게 △공공임대주택 23만5천호 △신혼희망타운 10만호를, 청년에겐 △공공임대주택 14만호 △공공지원주택 13만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공급량 자체에서 이미 차이가 클뿐더러, 질적으로도 청년에게 불리한 내용이다. 청년에게 집중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공공지원주택은 민간 건설사의 배만 불렸다고 비판받은 기업형 임대주택(뉴스테이)을 개선한 것이다. 입주자격과 초기 임대료 제한 등에서 ‘공공성’을 강화했다고는 하지만, 시세의 70~85%인 임대료는 30~80% 수준인 공공임대보다 많게는 세 배 가까이 비싸다. 아주 단순히 보자면, 월세 50만원이나 그 80%인 40만원이나 저소득 청년이 감당하기 힘들긴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신혼부부가 주거복지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라야 하는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신혼희망타운 10만호를 새로 지어 시세보다 낮은 값에 신혼부부한테 공급하겠다는 계획은 내 집 마련과 저출생 문제를 연결지은 결과다. 그런데 김기태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이 지난해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분석해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에 제공한 결과를 보면, 신혼희망타운 입주 대상인 혼인 기간 7년 이하의 신혼부부는 맞벌이는 말할 것도 없고 외벌이 가구조차 소득, 자산, 순자산 모두 1인 가구, 미혼(비혼) 가구보다 많았다. 월평균 소득이 신혼부부는 496만원(외벌이 406만원)이었지만 1인 가구는 160만원, 미혼 가구는 276만원이었다. 평균자산과 평균순자산의 경우 신혼부부는 3억2188만원과 2억4050만원(외벌이는 각각 2억8766만원, 2억1307만원)인 반면, 1인 가구(각각 1억4245만원, 1억2362만원)와 미혼 가구(1억7601만원, 1억4897만원)는 그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를 5분위로 나눠보면 1인·미혼 가구는 하위 1~2분위에, 신혼부부는 중상위인 3~5분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었다.(표 참조)
이는 돈이 있어야 결혼도 한다는 속설을 뒷받침하는 결과다. 더구나 신혼희망타운은 낮은 공급가 탓에 시세차익 수억원이 보장돼 ‘로또’로 불린다. 주택 구매·전세자금 대출의 규모와 금리, 조건 역시 1인 가구보다 신혼부부에게 훨씬 유리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1인·청년 가구가 압도적인 비율로 월세에 거주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대체로 국가의 지원이 없어도 집을 마련할 여력이 있는 신혼부부에게 주거정책의 초점을 맞추면서 청년의 요구에는 사실상 대답을 하지 않는 게 주거 불평등의 핵심”이라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공급목표로 잡은 주택의 단위가 신혼부부는 집(호), 청년은 방(실)이라는 건, 청년은 집이 아니라 방에 살아도 된다는 인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라고 덧붙였다.
조혜정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사회정책센터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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