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특허갑질’을 한 퀄컴에 시정명령을 내리고도 2년 동안 이행계획서를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위가 자체 업무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한겨레>가 전해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확보한 공정위 문건을 보면, 공정위는 2016년 말 퀄컴에 시정명령을 한 이래로 지난해 3월 단 한 차례 이행계획서를 받았다. 퀄컴은 당시 이행계획서에 “(공정위의) 시정명령 내용을 모뎀칩세트 제조사 및 휴대폰 제조사에 통지했다. 다른 시정명령과 관련해 본 건 의견에 대한 취소소송 제기 및 효력정지 신청을 하였으며, 법원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시정명령을 이행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시정명령의 효력을 따지는 재판을 제기했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이행계획서가 아닌 이행거부서인 셈이다.
그해 12월 대법원은 퀄컴의 이의신청에 기각 결정을 내렸다. 퀄컴이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사라진 것인데, 공정위는 그 뒤로 현재까지 퀄컴으로부터 이행계획서를 받지 않았다. 공정위 담당 과장은 “퀄컴으로부터 2017년 3월 시정명령에 대한 이행계획서를 받았다. 이후에는 이행 여부를 확인하면 되고, 올해 2월까지 총 4차례 점검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공정위 규칙(회의운영 및 사건절차 등에 관한 규칙 64조)상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시정명령을 할 경우, 당사자에게 이행계획서를 받아야 하고, 이행 여부를 확인한 뒤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두 차례 독촉한 뒤 고발 조처해야 한다.
전해철 의원은 “퀄컴이 행정처분에 불복하고 시정명령에 대한 실질적인 이행계획을 수립하지 않았음에도 공정위의 조치가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시정명령 취지에 따른 법 집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일 열린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때도 공정위가 퀄컴에 내린 시정명령 이행 여부를 살피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시정명령을 적극적으로 이행하라고 독려하고 미시행하면 추가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지난 2016년 12월 “퀄컴이 이동통신과 관련한 표준필수특허(SEP)를 받고도, 독점적 지위를 남용해 불공정 거래를 해 왔다”며 1조31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인텔, 미디어텍, 삼성전자 등 모뎀칩세트 제조사 등과 특허 사용권 계약 협상에 임하라는 등의 시정명령을 내렸다. 업계는 시정명령이 통신 시장을 흔들 수 있는 파급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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