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6개월 연속 하락하는 등 최근 경기가 정점을 지나 수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굳어지면서, 문재인 정부가 가장 중요한 경제 지표로 삼고 있는 고용의 향방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2000년 이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4번의 경기 수축기를 거쳤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크게 반등했던 경기가 다시 식어가던 2000년 8월~2001년 7월 △카드사태 등으로 내수 경기가 얼어붙었던 2002년 12월~2005년 4월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나타났던 2008년 1월~2009년 2월 △유럽 재정위기 영향을 받았던 2011년 8월~2013년 3월입니다.
경기 수축기라고 해서 취업자 수 증감이 일정한 패턴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생각하듯 경기 하락에 따른 고용감소가 나타났던 때도 있지만, 경기와 무관하게 고용감소가 크지 않거나 오히려 늘어나는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양한 경제지표 가운데서도 고용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수축기로 기록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어 낸 것일까요?
갈림길① 어떤 산업이 경기 둔화의 진앙지 인가?
2000년 8.9%에 이르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기록했던 우리 경제는 2001년 성장률이 4.5% 수준으로 하락하며 완연한 경기 수축 단계에 접어듭니다. 그런데 실업자 수가 8만명 감소(2001년)하는 등 고용지표에선 경기 악화의 영향이 별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국노동연구원은 “경기와 고용(사이)에서 나타나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한 보고서(최근의 경기둔화와 노동시장의 고용동향)를 발표합니다. 당시 연구원이 내놓은 답의 핵심은 ‘반도체 등 성장기여율은 높지만 고용 영향은 작은 제조업 특정업종이 경기둔화를 주도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반도체는 경기지표에 미치는 영향은 압도적이지만 장치산업이라는 특성상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당시 높은 성장세를 보이던 사회·개인서비스업이 제조업에서 밀려난 인력을 흡수하는 역할도 톡톡히 했습니다. 반면 내수 서비스 산업을 중심으로 경기 둔화가 촉발됐던 2002년 말부터 2005년까지는 고용둔화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2003년 취업자 수 증가폭은 마이너스(-1만명)로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최근 경기둔화 양상은 고용에 특히 불리합니다. 우선 고용창출력이 낮은 반도체산업은 성장세를 유지하지만, 고용과 밀접한 자동차·조선업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됐습니다. 홍민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고용둔화 요인의 절반 가까이는 조선·자동차 등 고용 영향이 큰 제조업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중국인 관광객 회복이 더디게 진행되는 탓에 ‘국내소비’가 부진하고 소비심리가 하락 추세인 것도 민간 서비스업 고용에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갈림길② ‘강제적인 일자리 나누기’가 가능한 상황인가?
‘메가톤급 경제위기’인 세계금융위기와 함께 찾아온 2008~2009년 경기 수축기는 고용감소를 동반했습니다. 다만 2009년 취업자 수는 전년대비 8만7천명 줄었는데, 취업자 수가 127만명이나 급감했던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 때에 견주면 미미한 수준입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발생했는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고용 유연화’가 끼친 영향이 상당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추정입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통상 임금체계나 고용구조가 경직적일수록 위기 때 고용량은 크게 줄어든다. 이미 상당 수준이었던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강제적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당시 고용감소가 완화된 측면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즉, 주 5일을 일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1주일에 하루 이틀만 일하게 되면서, 노동시간과 임금은 감소했지만 취업상태는 여전히 유지했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향은 2011~2013년 경기 수축기에 더욱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이때는 경기 위축에도 불구하고 취업자 수 증가폭은 오히려 이전보다 늘어나 연간 40만명 수준을 보였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이를 ‘노동공급 주도형’ 취업자 증가로 설명합니다. 경기 위축에 따라 일자리는 줄었지만, 마침 단시간·저임금 노동이라도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여성이나 베이비부머 은퇴세대가 노동시장에 대거 뛰어들었습니다. 그 결과 일자리가 단시간·저임금 단위로 쪼개지면서 전체 고용량은 오히려 증가세를 보였다는 얘기입니다. 실제로 당시 임금상승률은 명목경제성장률을 밑돌았습니다. 노동시장 전반의 상황만 놓고 보면 ‘노동의 질을 희생하고 얻은 고용증가’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최근에도 취약한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강제적인 일자리 나누기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통해 노동의 가치를 높이려는 문재인 정부가 이러한 현상을 수수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고용량을 지키면서 고용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전 경기 수축기 노동시장 정책의 틀에서 벗어난 전혀 다른 관점과 정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