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장기채 발행 물량 적어 수급 불균형이 주 요인”
거래소 “10년 이후 한국경제 성장 둔화 예상 반영된 탓”
거래소 “10년 이후 한국경제 성장 둔화 예상 반영된 탓”
국내 장기 채권 시장에서 지난해 10월 만기 20년·30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오히려 낮은 이상현상이 채권 거래 사상 처음으로 일어난 이후 장기금리 역전이 1년간 지속되고 있다. 또 국채 10년물(장기 채권)과 3년물(단기 채권) 사이의 금리 격차도 빠르게 축소되면서 장·단기 금리 역전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다. 장기 채권 시장에서의 수요-공급 불균형과 우리 경제의 중장기 성장 둔화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우리나라 국채금리(최종호가수익률·월평균)는 만기 3년물 2.02%, 10년물 2.45%, 20년물 2.41%, 30년물 2.394%를 기록했다. 20년물과 30년물 금리가 10년물보다 낮아지는 ‘기현상’이 우리 국채 거래 역사상 처음으로 발생했다. 이런 이상현상은 최근 1년간 지속중이다. 채권금리는 잔존만기가 긴 장기채권일수록 위험이 커지고, 이에 따라 이자수익(금리)을 더 높게 줘야 장기 채권수요를 일으킬 수 있는 터라 장기채권일수록 금리가 더 높은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작년 10월부터는 1년, 3년, 5년, 10년물까지 금리가 점차 높아지다가 10년물에서 정점을 찍은 뒤 20년·30년물은 10년물보다 금리가 오히려 낮아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달들어 19일까지 잔존 만기별 평균 국채금리는 3년물 1.95%, 10년물 2.24%, 20년물 2.18%, 30년물 2.11%로 10년물과 20년·30년물 사이의 금리 역전이 더 확연해지고 고착화하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김태경 한국은행 자본시장부장은 “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와 공급 쪽에서의 불균형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로 장기국채 매수자는 수요 규모가 큰 국내 보험사나 연기금인데, 우리 정부의 장기채 발행물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서 만성적 초과수요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즉 공급보다 수요가 많아서 20년·30년물은 금리를 낮게 줘도 유통되는 쪽으로 채권금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수요자인 보험사의 경우 고객이 맡긴 보험료가 장기성 채무이기 때문에 채권 등 투자자산도 본래 만기가 긴 상품에 주로 투자하는데다, 오는 2022년부터 적용되는 새로운 ‘국제회계기준(IFRS) 17’에 맞추려면 20년·30년 장기채권을 더 많이 매수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한국거래소 쪽의 설명은 한은과 다소 결을 달리한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향후 중장기적으로 한국경제 성장세가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채권시장에 반영되면서 장·단기 금리 축소가 일어나고 단기금리가 더 높아지지는 역전 가능성까지 대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의 수급 측면을 강조한 한은과 달리, 장기물 금리가 흔히 반영하는 중장기 성장이나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 등 거시적 요인을 든 셈이다. 적어도 미국 경제 등의 경험에 따르면, 장·단기 국채 사이의 금리 격차(스프레드)는 향후 경기국면에 대한 시장의 예상을 반영하는 편이다. 경기 확장기에는 장기국채 금리가 빠르게 높아지면서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반면, 경기 수축기에 접어들면 장기국채 금리 상승폭이 줄어들면서 격차는 축소되는 경향을 보인다. 더불어, 올들어 9월까지 국세수입 규모가 전년동기에 비해 26조6천억이나 더 걷히는 ‘세수 풍년’이라서 재정지출을 위한 국채발행 필요성이 작다는 점도 10년 이상 장기채권 금리의 가파른 하향세를 점치게 한다. 10년 이상 장기채권 발행(공급) 물량이 줄어들면 해당 채권 금리는 낮아지기 때문이다.
국채 10년물과 20년·30년물 사이이 금리 격차 축소·역전뿐만 아니라, 기준금리 변동의 영향을 당장 받는 단기 3년물과 장기 10년물 사이의 금리격차도 지난 1분기 말부터 점차 축소되는 양상이다. 지난해 말 0.33%포인트였던 두 국채의 금리 격차는 지난달 말 0.3%포인트로 줄었고, 19일에는 0.26%포인트로 더 좁혀졌다. 지난해 11월 기준금리 인상 이후 3년물 금리는 큰 폭으로 오른 반면 10년물 금리는 오르는 폭이 상대적으로 작았던 데 따른 결과다. 주로 레버리지를 활용해 국채선물에 투자하는 외국인이 올들어 장기금리 하락에 베팅하면서 3년물 매수보다 10년물 매수를 더 크게 늘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은이 오는 3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리면 단기 국채 금리가 더 빠르게 상승하면서 10년물 금리를 추월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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