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금리인상과 신흥국 금융불안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이 올 들어 국내 채권 순매수 행진을 지속하고 있다. 지난달 이후 국내 주식을 대거 팔아치운 외국인이 채권시장에선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금융감독원의 ‘10월 외국인 증권투자 동향’ 자료를 보면, 외국인이 올들어 국내 국채 현물·선물시장에서 꾸준히 순매수를 하면서 상장채권 보유잔고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11조8천억원에 이른다. 이에 대해 한국은행은 원화표시 국채 신용등급(AA)이 다른 신흥국에 견줘 안정적이고, 우리 경제의 대외건전성이 높은데다 경제 펀더멘탈(기초체력)도 여전히 양호하다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은 국제국 쪽은 “외국인의 한국채권 보유잔고 중 약 80%가 국채이고, 투자자산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외국 중앙은행 등 공공자금이 주요 매수 주체”라며 “국제채권거래시장에서 매수자들이 이런 안정성을 높게 보고 순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와 국가신용등급이 같은 다른 나라 국채에 견줘 우리 국채의 안정성과 매력을 더 높게 보고 있다는 얘기다.
증권가는 이와 좀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외국인의 국채 순매수 대열에 환율, 보다 정확하게는 실질실효환율이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에스케이(SK)증권에 따르면 지난 2000년 이후 원-달러 명목환율은 평균 1123원으로, 현재 수준(20일 1128원)과 엇비슷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물가수준과 달러 외에 유로·엔·위안 등 다른 교역대상국의 통화 가치와 견준 실질실효환율(2010년=100 기준)은 대략 113가량이다. 원화 가치가 2010년에 견줘 13% 정도 절상된 셈이다. 실질환율은 비교 대상 국가의 상대물가 변동을 반영하고 또 우리나라 주요 교역상대국 통화를 교역량으로 가중평균한 것으로, 2016년 이후 완만한 절상 추세를 보이다가 올해 들어선 지난 20년 평균치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안정화되고 있다.
실질실효환율을 고려한 ‘체감환율’은 현재 980원 정도로, 명목환율에 견줘 148원가량 낮다. 한국거래소 쪽은 “국내에 달러를 투자하는 외국인으로서는 원화로 바꿔 국채를 산 뒤 통화스왑으로 헤지하면 (실질실효)환율 차이를 감안할 때 그래도 이익이 나기 때문에 한국 채권에 매력을 느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인이 다른 나라의 채권에 투자할 때에는 내외금리차뿐 아니라 환율변동에 따른 투자수익 변동도 중요하게 고려하는데,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원화가치가 높기 때문에 환율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다는 뜻이다.
에스케이증권은 “작년은 우리 기업의 매출 등 외형이 전반적으로 성장하면서 외국인들이 채권보다 주식을 선호했으나, 올해 들어선 외형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며 “이런 체감환율 수준에서는 수익성 등 성장과 관련된 주식자산보다는 물가 위험과 관련된 채권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채권은 물가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데,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구매력 가치가 빠르게 소멸해 채권 가치도 하락한다. 이와 달리 물가가 낮은 상태에서 안정적 수준을 지속한다면 외국인으로선 채권수익률(금리=이자수익+매매차익)에 매력을 느끼게 된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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