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보안을 이유로 중국 화웨이가 공급하는 통신장비를 쓰지 않게 해달라고 동맹국들을 사실상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웨이는 “선을 넘은 처사”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미-중 무역분쟁의 또 다른 전선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22일(현지시간) 소식통의 말을 빌려, 미국 정부가 동맹국 이동통신·인터넷 사업자들을 상대로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작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미국 관리들이 독일·이탈리아·일본 등 이미 화웨이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동맹국의 관리들과 통신사 임원들에게 사이버안보 우려를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중국 정부가 화웨이 장비를 통해 불법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거나 통신을 불능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차세대 이동통신(5G) 등 기간통신 시설의 사이버 위협에 대한 우려를 전파하고 있다”는 한 미국 관리의 말을 전하며, 동맹국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의 목적은 공공·민간 부문을 가리지 않고 화웨이 부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미국의 우려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들에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한결같이 “처음 듣는 얘기”라는 반응을 보였다.
화웨이는 이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대한 화웨이 입장’ 자료를 내어 “(미국 정부의) 이런 행동에 대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부의 행동이 해당 관할 범위를 넘어설 경우 이를 격려하고 용인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화웨이는 전 세계 170여개 나라의 주요 통신사, 국내외 500대 기업 및 수억명의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수많은 기업 및 소비자가 화웨이를 선택하는 이유는 화웨이에 대한 신뢰와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화웨이는 "파트너사 및 고객이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정확한 선택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화웨이는 삼성전자와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하는 중국의 통신장비 업체이다. 이동통신 기지국이나 인터넷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는 세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이번 조치는 화웨이 장비가 미국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려는 작전의 전선을 해외로 확장한 것”으로 분석했다. 화웨이는 2012년 미국 의회 보고서에서 염탐과 통신방해 등 국가안보를 위협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꼽혀 중국의 또 다른 대형 통신장비 업체인 제트티이(ZTE)와 함께 미국 시장 접근이 봉쇄된 바 있다. 미국 의회는 연방 공공기관들이 화웨이와 이들 기업으로부터 장비를 사들이는 행위를 금지했다. 이에 미국전신전화(AT&T)와 버라이즌 등 미국 이통사들도 화웨이 스마트폰을 출시하지 못한다.
미국의 화웨이 장비 사용 억제가 디지털 세상의 지배권을 놓고, 미국이 동맹국들과 손잡고 중국과 벌이는 ‘기술 냉전’으로 봐야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도발을 일삼는 국가나 완전한 적성국을 포함한 권위주의 정권들을 이롭게 하는 기술 강호들이 발호하는 것을 크게 우려한다는 것이다. 미국과 함께 정보공동체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를 구성하는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우리나라의 에스케이텔레콤(SKT)·케이티(KT)는 이미 공개적으로 화웨이의 차세대 이동통신 장비를 도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이번 행태에 대해 “미-중 무역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