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엘지(LG) 회장이 첫 정기인사에서 ‘안정 속 변화’를 택했다. 기존 부회장단을 모두 유임시킨 대신, 새 회장 체제의 주춧돌이 될 신규 상무를 대거 발탁하면서 외부 수혈을 통해 지주사 핵심 보직을 맡겼다. 크게 판을 흔들지 않으면서 구 회장의 그룹 장악을 위한 교두보를 확충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28일 엘지그룹 지주사인 ㈜엘지와 엘지전자·엘지유플러스(U+)·엘지디스플레이·엘지이노텍 등이 이사회를 열어 정기 임원인사를 확정했다. 이번 인사는 지난 6월 ㈜엘지 대표이사 회장에 오른 구 회장의 첫 인사인 만큼 인사 폭과 방향을 놓고 관심을 모았다.
이번 인사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부회장단이 전원 유임됐다. 엘지그룹은 지주사를 중심으로 전자(조성진)·통신(하현회)·생활건강(차석용)·디스플레이(한상범) 등 각 부문별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책임 경영하는 체제다. 지난 9일 박진수 전 엘지화학 부회장이 신학철 쓰리엠(3M) 수석부회장으로 교체될 때만해도, 부회장 교체가 더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전원 자리를 지켰다. 지난 5월 고 구본무 전 회장이 숨지며 회장직에 오른 구광모 회장이 이들을 교체하는 것은 시기적으로도, 조직 안정을 위해서도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규 임원인 상무를 대거 발탁한 것도 특징적이다. 엘지그룹의 올해 상무 승진자는 134명이다. 지난해 94명, 2016년 100명보다 30% 이상 늘렸다. 엘지그룹이 지에스(GS)그룹과 계열 분리된 2004년 이래 최대 규모다. 이들은 앞으로 수십년 이어질 ‘구광모 체제’에서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엘지는 “미래 준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재를 발탁한 데 따른 것”이라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인재를 조기에 발굴 육성함으로써 미래 사업가를 키우고 최고경영자 후보 풀을 넓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부 수혈도 주목된다. 순혈주의가 강한 엘지는 그동안 외부 영입에 인색했는데, 이번에는 쓰리엠에서 영입한 신학철 엘지화학 부회장을 필두로 핵심 보직에 외부 인사를 여럿 앉혔다. 지주사인 ㈜엘지가 홍범식 전 베인앤(&)컴퍼니 대표와 김형남 전 한국타이어 연구개발본부장, 김이경 전 이베이코리아 인사부문장을 영입해 각각 경영전략(사장)·자동차부품팀(부사장)·인재육성(상무) 등 주요핵심 업무를 맡겼다. 또 엘지전자는 은석현 보쉬코리아 영업총괄상무를 자동차전자장치(전장) 사업인 VS사업본부 전무로 영입했고, 엘지경제연구원은 박진원 에스비에스(SBS) 논설위원을 연구담당 전무로 영입했다.
이 밖에도 미래먹거리로 통하는 전장·인공지능·로봇 등에 힘을 실었다. 엘지전자 최고경영자 직속으로 ‘로봇사업센터’와 ‘자율주행사업 태스크’를 신설하고, 인공지능 연구 강화를 위해 북미 조직을 ‘북미 아르앤디(R&D) 센터’로 통합한다. 특히 전장사업의 경우 스마트사업부장을 역임하며 자동차부품사업 전문가인 김진용 부사장을 선임하고, 영업전략 강화를 위해 은석현 전무를 외부 영입하는 등 공을 들였다. 반면 스마트폰(MC)사업 본부장을 맡았던 황정환 부사장은 1년 만에 융복합개발사업부문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 자리를 권봉석 티브이(HE)사업 본부장이 겸임한다. 실적 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시장은 정체되는 스마트폰사업을 일부 조정하는 움직임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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