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포용성장과 포용국가의 전략 및 과제를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왼쪽부터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포용성장과 포용국가가 집권 3년차를 앞둔 문재인 정부의 핵심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초 국회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가 내년도 국정 방향”이라고 말했다. 앞서 9월엔 포용국가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3대 비전과 9대 전략을 확정했다. 경제정책(포용성장)과 사회정책을 통합한 국가 발전전략(포용국가)을 제시한 것이다.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은 현 정부가 정책 기조를 가다듬는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전문가를 한자리에 모아 포용성장과 포용국가의 전략 및 과제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28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엔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등 4명이 참석했다.
-포용성장이나 포용국가 모두 일반인들에겐 아직은 낯선 개념 같다. 먼저 ‘포용성장이란 이런 것이다’부터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성경륭(이하 성) 그동안의 대기업 중심, 수출 중심 성장 전략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고 생각한다. 수십년간 선성장 후분배를 마치 신화처럼 떠받들어 왔다. 결과가 어땠나. 소득 분배는 대단히 배타적이고 배제적으로, 특정 상위집단과 기업 측에 유리하게 이뤄져왔다. 일회적이고 일시적인 분배 개선이 아니라 분배와 재분배를 결합해 모두의 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가자는 게 기본 문제의식이다. 말하자면 ‘모두를 위한 성장’이다.
배규식(이하 배)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맥락을 함께 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맹국 전체가 거대한 정책 전환 중이다. 1970년대 말 이후의, 이른바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오히려 경제위기의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조흥식(이하 조)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성장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세계적 흐름과 동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구체적 프로그램이나 정책으로 곧장 오해해선 안 된다.
■ “1차 분배와 2차 분배는 함께 가는 것”
-큰 틀에서 봤을 때 반성적 성장 담론이라는 이야기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국내에선 정부가 초기에 내세웠던 소득주도성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두고 여전히 혼선이 빚어지는 느낌이다.
홍장표(이하 홍) 문재인 정부에서 정책 슬로건의 진화과정으로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 현 정부 초기에 세바퀴 성장을 제시했다. 잘 알다시피 일종의 소동 같은 게 있지 않았나. 소득주도성장은 청와대가, 혁신성장은 기획재정부가, 공정경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식으로, 언론에서 대립구도를 몰아가며 낙인을 찍어버렸다. 세가지가 서로 대립하는 게 아니다, 같이 가는 것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이 포용성장 개념을 직접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경제정책은 일정한 틀을 갖췄는데 마치 사회정책이 경제정책에 종속되는 것 같은 모양새라,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의 통합적 접근이라는 관점에서 포용국가 개념이 나온거다.
-소득주도성장이 상대적으로 1차 분배 개선에 무게를 뒀다면, 포용성장에선 2차 분배(재분배) 정책을 전면에 내건 게 아니냐고 이해하는 시각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홍 분명한 오해다. 소득주도성장 패러다임엔 처음부터 두 가지가 다 있었다. 1차 분배와 2차 분배 개선이 함께 가야 한다, 소득 분배 개선뿐 아니라 가계비용 경감도 함께 가야 한다는 건 일관된 메시지였다. 정책의 타임 스케줄상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이 먼저 갈 수밖에 없었지만, 이걸 가지고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인상’이라고 일방적으로 몰아간 측면이 있다. 대표적으로 일자리 안정기금이나 문재인 케어를 봐라. 문재인 케어는 왜 소득주도성장으로 보지 않나.
조 성장의 과실로서 소득을 보장하고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없애는 건 당연히 한묶음으로 가는거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거다. 노동시장 내의 차별을 없애고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리고 사회보장 확충을 위해 누진적 조세체계를 구축해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것 모두가 포용성장에 맞물린 포용복지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성 여러 통계를 보면 상위 10%에게 돌아가는 소득 비율이 40% 이내에서 관리되는 나라들은 노르딕 국가 등 유럽의 일부 나라뿐이다. 1차 분배에서 불평등이 심화하는 걸 일단 막아주고, 부족한 부분은 재정을 통해 2차 분배에서 채워주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스웨덴이라고 해서 불평등이 작은 게 아니다. 1, 2차 분배를 통합적으로 관리할 방안과 모델을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
배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 중소기업, 특수고용직 등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다른 선진국들과는 구별되는 맥락이다. 그래서 포용성장을 이야기할 때 1차 분배와 2차 분배를 동시에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불평등한 소득 분배 구조를 그대로 놔두고 2차 분배 개선에만 매달리면 결과적으로 비용도 많이 들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소득주도성장에도 이미 다 포함된 내용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프랜차이즈 본사와 대리점 관계 개선 등 공정거래 질서를 세우는 일도 잊어선 안 된다.
■ “포용성장, 사회혁신 포함해야”
-혁신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정부가 제시한 포용성장 내용에 상대적으로 산업정책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는데.
성 노동시장 안에 있거나 혹은 거기서 빠져나와 있거나 상관없이 모든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인적자본을 향상시키는 적극적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조세·재정, 주거, 의료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정책 패키지를 짜자는 게 포용성장의 뼈대다. 포용성장과 혁신성장을 구분할 필요도 없다. 오이시디도 ‘포용적 혁신’을 말하고 있다. 대기업만 혁신하는 게 아니라 중소기업, 심지어 자영업과 풀뿌리에 이르는 사회혁신이 포용성장이라는 틀에 담겨야 한다.
배 혁신이라 하면 으레 창업이나 신기술부터 생각하는데, 사회혁신. 특히 현장 혁신이 중요하다. 이 부분은 포용성장에 좀 빠져 있다. 앞으로 보강돼야 한다. 현장 혁신이 이뤄져야 중소기업의 역량도 강화되고 거래 질서도 바로잡히는 데 보탬이 된다. 1차 분배 개선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홍 혁신성장을 죄다 규제 푸는 거로 오해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것,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 나는 이걸 혁신안전망이라 부르고 싶다. 이런 안전망은 소득주도성장이건 포용성장이건 중요하다.
조 인적자원의 중요성과 더불어 사람간의 관계, 즉 사회 자본, 신뢰 같은 문화적 요소도 중요하다.
-대체로 내년도 경기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배 과거 고도성장기에 일자리가 잘 늘어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우리 연구원에선 내년 일자리 증가수를 대략 13만~14만명 정도로 예측한다. 지난해에 생각보다 조금 좋았고, 역기저 효과로 내년엔 올해보다는 조금 나아질 것 같다. 일자리 늘어나는 데는 심리적인 효과가 쾌 크게 작용한다.
홍 내년엔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는 게 우려스럽다. 미?중 무역분쟁의 불똥이 어떻게 튈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선 내년이 재정을 많이 풀어야 할 상황이 될 것 같다. 포용성장의 성공을 위해서 확장적 재정정책이 내년의 유일한 카드가 아닐까 싶다.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한 현 정부의 실제 의지가 약한 건 아닌가.
홍 그렇진 않다. 그동안 확장적 재정정책의 효과를 내지 못한 건 의도하지 않는 결과로 봐야 한다. 재정 당국이 세수 추계를 제대로 못한 영향이 컸다. 세수 추계모델에 대해 전면적인 검토를 해봐야 한다.
조 재정 건전성이라는 믿음이 너무 강하게 고착돼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번에도 20조 정도 더 걷혔다는 거 아닌가. 좀더 과감하게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
■ “결국은 1·2분위 계층이 문제”
-현 정부 임기 중 1년 반이 지났다. 남은 3년 반의 시간 안에 어쨌든 성과를 내야할 처지다. 잘한 것과 보완할 것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내년도엔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 처방에 집중해야 하나.
성 결국은 1분위와 2분위 계층의 문제다. 고용정책 같은 것으로만 접근하기 어렵다. 조세 정책과 어떻게 연결할지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좀 더 정교한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홍 적어도 확인할 수 있는 건 근로소득은 늘었다는 점이다. 근로자가 아닌 가구 쪽이 문제다. 한계 자영업자들이 구조적으로 계속 탈락하고 있다. 1, 2분위 대책이 불충분했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근로소득장려세제(EITC) 등 기존 정책들의 분배 개선 효과가 구체적으로 어떤지, 어디에 빈틈이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배 1분위 중 근로자 외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2003년 53살에서 올해 68살로 높아졌다. 국민연금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고령화 추세 때문에 1분위 쪽으로 계속 내몰리게 돼 있다.
조 1년 반 동안 총론적으론 잘했는데 각론에서 약했다. 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내려면 선후, 강약, 완급 조절이 중요하다. 1, 2분위 대책과 3~5분위 대책은 달라야 한다. 정책 패키지 관점에서 계층별 기대효과를 정교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부양 의무자 기준 제도는 서둘러 풀어줘야 한다.
진행·정리 최우성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morgen@hani.co.kr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왼쪽부터), 조흥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원장, 성경륭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8일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 앞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