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사회적경제기업 평가모형 공청회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이 날 공청회는 신용보증기금,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조현경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장
신용보증기금(이사장 윤대희)은 올해 11월 말까지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 사회적경제조직에 1032억원의 보증을 제공했다. 담보능력이 부족한 기업에 보증서를 발급해 금융지원을 하는 신용보증기금(이하 신보)이 지난해 이들 기업에 보증한 규모는 약 160억원. 전담 조직을 두고,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한 해 사이에 금융지원이 6배 이상 늘었다. 신보뿐 아니라 다양한 경로를 통해 앞으로 사회적경제기업을 향한 금융지원은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올 2월 ‘사회적금융 활성화방안’을 발표해 사회적경제에 대한 자금지원의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내년 1월에는 도매금융 역할을 하는 사회가치연대기금이 출범할 예정이다.
하지만 금융지원이 늘어난다고 사회적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곳에 제대로 지원하지 못하면 자칫 엉뚱한 기업으로 돈이 흘러갈 수 있다. 이러다 금융회사의 부실이 늘어나면 “국민 세금을 퍼준다”는 비판이 일고, 그나마 어렵게 싹을 틔운 사회적경제에 서리가 내릴 수도 있다. 바람직한 사회적금융의 역할은 대상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지원함으로써, 두 가치가 선순환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럴 때 금융의 역할이 빛나고 사회적경제기업의 자생력도 생겨난다.
취약계층을 고용하고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는 등 사회적경제기업이 수행하는 공적 역할은 최근 널리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일반기업과 달리 금융지원에서 소외되어 운영이나 발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가장 큰 난관은 사회적경제기업을 평가할 만한 정교한 평가시스템과 데이터가 부족한 것이다. 일반기업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적용하면 사회적경제기업은 대출 부적격으로 나오기에 십상이다. 이런 점에서 지난달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신용보증기금과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주관으로 열린 ‘사회적경제기업 평가모형’ 공청회는 주목할 만하다. 공청회에서는 정부의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에 따라 두 기관이 연구 중인 ‘표준 사회적 가치 평가모형’과 협동조합 전용지표인 ‘쿱 인덱스’가 발표됐다. 신보가 12명으로 연구팀을 꾸려 4개월간 작업을 한 결과이다. 신보는 공청회에서 제기된 의견을 반영해 올해 안에 최종 평가모형을 발표하고, 내년 하반기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함께 고려한 지표구성
금융사의 기업평가모형은 어느 기업을 대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중치를 달리해 채점할지를 모델화하는 것이다. 신보가 이번에 공청회에 제시한 방안은 사회적경제기업을 둘로 나눠 ‘일반형 평가모형’과 ‘협동조합형 평가모형’을 제시했다. 조합원이 출자하고 이들의 복리를 추구하는 협동조합 (일반 및 사회적협동조합)과 다른 사회적경제기업(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이 운영 목적과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고 본 것이다. 이 두 유형의 기업에서 무엇을 평가할 지도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먼저 ‘사회적경제기업으로서의 부합성’으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만한 목적, 운영기반, 운영성과가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금융지원을 위한 타당성’으로 기업의 대표가 경영능력이 있는지, 기업이 업종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대출한 돈을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크게 봐서 해당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함께 평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때 추상적인 개념인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어려움이다. 신보의 방안은 인권, 노동, 사회적 약자지원 등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이하 기본법)에 제시된 13가지 사회적 가치를 사회적경제기업의 특성에 맞게 조정해 측정 가능한 가치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법에 ‘노동권의 보장과 근로조건의 향상’으로 규정된 ‘노동’이라는 가치의 경우 ‘최저임금 보장’이나 ‘동일가치 동일임금 실현’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이다. 아울러 사회적경제기업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하는데도 재무지표는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들 기업은 운영의 특수성(수익의 사회환원, 높은 인건비 비중, 영세성) 때문에 일반기업에 적용하는 재무지표를 적용하면 대출을 받을 곳이 별로 없다. 이에 따라 매출액증가율, 영업이익증가율, 매출총이익률, 이자보상배율, 차임금의존도, 조합원 환원 (일반 협동조합의 경우) 등 최소한의 핵심지표만을 모형에 반영했다. 특히, 영업이익률 대신 매출총이익률을 적용했는데 이는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영업이익을 계상하기 전에 이익을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신보는 여기에 사회적경제기업 성공 요인, 협동조합 성공 요인, 사회적경제기업 평가요소 등의 내용을 문헌 조사해 비재무 지표 항목들을 구체화했다. 최종적으로 재무지표와 비재무 지표를 종합하여 구성된 평가모형의 지표구성은 아래 표와 같다.
사회적경제기업 평가모형 지표구성 자료: 신용보증기금
신보는 이 평가모형의 지표들을 사회적기업(155개)과 협동조합(112개)에 제시하고 각각의 중요도를 물어본 결과 평균 8.0 점(10점 만점)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며 평가요소의 구성은 적절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회적 금융 지원기관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실제 운영에 들어가면 계량적이고 일률적으로 기준을 충족하는지를 보는 평가가 아니라 평가받는 기업의 상황 등 정성적인 요소도 반영하는 유연한 평가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경제기업 평가 프로세스 자료: 신용보증기금
“사회적경제기업의 역량개발까지 추구하는 모형이 돼야”
신보의 평가모형은 신보뿐 아니라 다른 사회적금융 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표준모형을 염두에 둬서 만든 것이다. 이는 사회가치연대기금 등 다른 사회적금융기관이나 사회적경제기업을 키우려는 지방자치단체가 금융지원을 할 때 평가와 심사의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공청회에서는 모형의 미비점과 개선방향에 대한 여러 지적과 건의가 나왔다. 김대훈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정책위원장은 “실제 보증과 금융을 다루는 기관에서 사회가치 평가지표를 개발한 것은 의미가 크다”면서도 “모형으로서의 지표와 축적된 노하우는 다르므로, 신보가 실제 적용하면서 쌓이는 경험을 다른 사회적금융 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금융은 이윤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한다. 이 때 필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를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다. 단지 사회적경제 조직이라고 해서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명을 표방하며, 이를 잘 수행하느냐를 판별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날 신보가 제시한 평가모형이 그걸 충족할 수 있느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대표는 “‘싼 과외 학원을 만들겠다’는 기업이 사회적 가치가 있다고 봐야 하는 지, (사회적 가치 평가에는) 복잡한 고민이 있다”며 “사회적 가치의 명확한 판단 기준, 주제, 포괄범위를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법센터 더함의 양동수 변호사는 “모델이 참고한 13가지 공공기관의 사회적 가치 말고도 사회적으로 승인되고 포괄적인 사회적 가치가 모델에 좀 더 포함되어야 한다”며 “기업이 생각하는 사회적 가치와 사회가 인정하는 가치가 다르다면 금융이 컨설팅을 통해 그런 내용을 다듬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적경제기업의 사회적 가치 적용 기준 자료: 신용보증기금
양 변호사의 의견처럼 평가모형이 심사, 평가 기능뿐 아니라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해 역량을 높이는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이 반복해서 나왔다. 김대훈 위원장은 “점수에 따라 단순히 (금융지원) 적격과 부적격으로 판단하는 데 그치지 말아야 한다”며 “특정한 영역이 부적합할 때는 이를 보완하는 컨설팅까지 담아내 사회적경제기업이 부족한 것을 보완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구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균형을 맞추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며 “사회적 가치에 좀 더 초점을 맞추되 경제적 가치가 따라오는 지점을 찾아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평가모형이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선순환 메커니즘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업평가를 치밀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경제기업의 어려움을 덜고 활성화하려는 평가모형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금융회사에서 일한다는 한 청중은 “이런 평가 모형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면 많이 지원할 지 고민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 방안으로 평가할 때 과연 (사회적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공통적으로 적용할 항목을 지정하고, 지역 특성에 따라 자율적인 여지를 두는 등 더 많이 지원하는 쪽으로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기업을 운영한다고 밝힌 청중석의 청년은 “(평가모형이) 경영자의 능력을 중요하게 다루는데 청년 사회적기업가는 과거도, 현재도 없고 미래밖에 없다”며 이런 내용을 어떻게 평가에 반영할 것인지를 물었다.
일반모형과 협동조합형 모형을 따로 두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조혜경 한양대 교수 (글로벌사회적경제학)은 “일반형과 협동조합형을 구분할 만큼 항목과 지표상의 차이가 없다”며 “표준평가모형답게 통합적인 지표를 만드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중석의 한 협동조합 관계자는 “협동조합은 직원이 소비를 통해 매출을 일으키기도 하고 직원이 투자하기도 한다. 내부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은 사회적 가치 창출이지만, 재무적으로는 낮게 평가된다”며 “협동조합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꼼꼼하게 분석하고 리스크 감수하는 캐나다 퀘벡처럼
대출을 위해 기업을 평가하는 것은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적경제기업은 정량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사회적 가치를 평가해야 해서 더욱 어렵다. 그렇다고 평가체계를 갖추는 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사회적금융이 활성화된 캐나다 퀘벡의 사례는 그런 가능성을 잘 보여준다. 사회적경제 활동가인 주세운 동작신협 과장은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에 한 기고에서 퀘벡의 사회적금융기관은 “공동체 기여도와 조직의 역량, 재무적 지속가능성이라는 3가지 대주제 아래 12가지의 소주제, 67개에 달하는 세부적인 체크리스트를 통해, 하나의 사회적금융 프로젝트를 심사하는데, 거의 책 한권 분량의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그만큼 철저하게 사회적금융이 추구하는 가치를 고민하고 또 분석하고 있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퀘벡 사회적금융이 90%의 상환율을 자랑하는 것은 단순히 저리로 자금을 공급하는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추구하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신보가 이날 공청회에서 제시한 평가모형은 척박한 한국의 사회적금융 환경에 내딛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형이 캐나다 퀘벡의 사회적금융 성공 경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현장에 적용하며 데이터를 쌓고 수정, 보완해 가는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시민경제센터 연구위원
bhlee@hani.co.kr
이날 공청회에 온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 사회적경제기업 관계자들이 신보의 평가모형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조현경 시민경제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