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오전 강원 강릉시 운산동의 강릉선 KTX 열차 사고 현장에서 코레일 관계자들이 기중기를 이용해 선로에 누운 객차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혹한의 추위에 발생한 케이티엑스(KTX) 탈선 사고의 피해를 최소화한 건 승객들의 침착한 대처였다. 8일 아침 강원 강릉시에서 벌어진 열차 탈선 사고에 승객들은 어린이와 노인들을 먼저 대피시키고, 혹한을 피할 공간을 찾는 등 스스로 안전을 확보했다. 강릉역에서 서울로 향하는 케이티엑스 제806열차에 탑승한 김경민(29)씨는 사고 당시의 상황을 실황 중계에 가까울 정도로 정리해 <한겨레>에 제공했다. 이날 아침 7시30분께 열차에 탑승한 김씨의 자리는 4호차 ‘1A’. 열차 출입문 바로 앞이었다. 열차가 강릉역을 출발한 지 몇분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난기류에 비행기가 흔들리는 느낌으로 열차가 흔들렸다”. 이어 지진이 일어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열차는 50도쯤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김씨와 승객들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출입문 쪽 승무원도 쓰러져 있었다. 이날 7시35분께 김씨를 비롯한 198명의 승객을 태운 열차가 탈선한 순간이었다.
기록에 남겨진 김씨의 대응은 매우 차분했다. 그는 옆자리 승객과 더 기울어질 위험은 없는지 상의하고, 쓰러진 승무원을 일으켜 세웠다. 이 승무원은 급박한 목소리로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제가 앞 칸에 가서 방송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3분쯤 지난 뒤 통로 문이 열리자 승객들은 알아서 기울어진 열차에서 내리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구조가 이뤄지지 않은 사이, 빈자리를 채운 것은 김씨와 열차에 탄 군인들이었다. 김씨는 “공군으로 추정되는 몇몇 친구들이 출입문 앞에 서서 승객들의 손을 잡아주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거의 안아서 내려드렸다”고 전했다. 승객이었던 군인들은 ‘공황 상태’인 승객들에게 “짐은 제게 주세요” “일단 난간에 앉으세요”라며 어느새 안전요원처럼 움직였다. 구급차와 버스 등을 기다리던 사고 승객들이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비닐하우스를 내준 이도 주변 민가에 살던 시민이었다. 코레일의 대처는 침착했던 시민들의 모습과 대조됐다. 먼저 사고 20분 뒤인 8시께에 코레일 관계자와 구급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은 부상자, 노약자들을 우선 챙기며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 승객들은 선로에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고 한다. 8시14분께, 강릉역장이 추위 속에 대기 중이던 승객에게 “버스가 지금 오고 있거든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라고 말했다. 찬 바람에 떨던 승객들 앞에 버스가 도착한 것은 오전 9시1분께였다.
사고 복구는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 강릉선 탈선 사고 이틀째인 9일 정오까지 사고 열차는 사고 현장에 쓰러져 있었다. 코레일은 직원 400여명과 기중기 4대 등을 동원해 복구 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은 기중기를 동원해 열차 총 9량 가운데 1호 객차를 강릉기지창으로 옮겼다. 이날 낮 12시께에는 나머지 객차 7량과 후미 기관차 1량 가운데 누워 있던 4∼6번 객차를 일으켜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코레일은 사고 구간을 제외한 서울역~진부역 구간에서만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진부역~강릉역 구간은 대체버스 45대를 투입해 승객들을 연계 수송하고 있다. 전날부터 이 구간을 운행하고 있는 버스기사 김아무개(56)씨는 이날 <한겨레> 기자에게 “어제는 차가 많이 부족했다. (사고 소식이 알려져서인지) 오늘은 승객도 줄고 안내도 잘돼 기차 시간에 맞춰 승객들을 싣고 가고 있다”고 전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10일 새벽 2시께 복구 작업을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다만 운행이 정상화되는 데까지는 좀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릉/채윤태, 임재우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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