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밑에서>는 독일 작가 헤르만 헤세가 1906년에 쓴 자전적 소설입니다. 재능 있는 한 소년이 어른들 세계에서 상처 입고 고민하는 것을 다룬 성장기 소설입니다. 소년 시각에서 비인간적인 어른 세계를 비판한 서정미 짙은 작품입니다.
독일 시사잡지 <슈피겔>은 최근 ‘수레바퀴 밑에서’와 똑같은 독일어 제목(Unterm Rad)으로 기사를 실었습니다. 독일 자동차회사 폴크스바겐이 ‘디젤 스캔들’ 뒤 협력업체에 공격적으로 납품가 인하를 압박하면서 갑질을 하고, 자기 뜻에 따르지 않는 협력업체를 고사하려 한다는 내용입니다. 디젤 스캔들로 물어야 하는 거액의 배상금 일부를 간접적으로 협력업체에 떠넘기려는 의도라고 <슈피겔>은 분석했습니다. 물론 폴크스바겐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합니다.
폴크스바겐은 협력업체에 민감한 정보도 요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생산방식부터 인건비, 재료 성분과 구성까지 여러 정보가 포함됐습니다. 협력업체들은 폴크스바겐이 협력업체의 사업기밀을 빼돌려 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다른 협력업체에 팔지도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볼까요. 10월25일 현대자동차는 2018년 3분기 영업이익을 발표했습니다. 시장에선 ‘어닝쇼크’(실적 충격)라고 했습니다. 영업이익은 2889억원으로, 애널리스트 예상치보다 70%나 낮았습니다.
현대차는 최근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는데요. 영업이익률은 2011년 10.3%를 기록한 뒤 줄곧 하락해 2018년 상반기에는 3.5%까지 추락했습니다. 한때 27만원까지 갔던 주가는 10만원 초반까지 떨어졌습니다. 시가총액 역시 2위에서 계속 밀리면서 9위로 주저앉았습니다. 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현대차의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하향 조정했습니다.
현대차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 300여 곳 역시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한 자동차부품업 관계자는 “현대차 3분기 실적이 추락해 부품업체 스스로 더 강해지도록 요구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자동차 제조업체와 협력업체는 서로 ‘신뢰’를 먹고 살아야 합니다. 회사가 잘나갈 때는 그 신뢰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회사가 잘나가지 못할 때는 작은 톱니바퀴에서 균열이 일어납니다. ‘수레바퀴 밑에서’ 서로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신뢰는 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한 핵심 가치입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제조업체와 협력업체가 ‘차돌’처럼 단단한 신뢰를 유지하기를 기대해봅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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