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의 폭로로 시작된 2017년 ‘적자국채 발행을 둘러싼 기재부와 청와대의 갈등’을 두고 진실 공방이 한창입니다. 결과적으로 4조원 규모의 적자국채 추가 발행은 없었지만 신 전 사무관의 폭로는 재정운용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적잖은 의문을 남기고 있습니다.
적자국채는 무엇?
해마다 정부와 국회는 예산을 짤 때 ‘예산 총칙’에 내년도 국고채 발행 계획을 담습니다. 기존에 시장에 풀린 국채의 만기·조기 상환과 교체, 국세 수입만으로는 부족한 재정지출을 메우기 위해서입니다. 이 가운데 국세 수입과 재정지출의 차이를 메우기 위한 국채를 ‘적자국채’라고 부릅니다. 적자국채 발행은 국가채무를 증가시키지만, 그 덕에 늘어난 재정지출로 그만큼 국가경제가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세수입이 또다시 늘어나고 그 돈으로 빚을 갚아 ‘재정의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국회는 2017년 예산에서 적자국채 한도를 28조7천억원으로 정했습니다. 그해 10월까지 적자국채는 20조원만 발행됐습니다. 8조7천억원을 추가 발행한다고 해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가운데 4조원만 추가 발행하자는 주장이 청와대를 중심으로 유력하게 떠오릅니다. 하지만 당시엔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혀 초과세수가 발생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자 부담을 지면서까지 굳이 적자국채를 추가 발행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었던 거죠.
세계잉여금 위한 적자국채면 괜찮은가?
지난해 갑작스런 1조원 바이백(조기상환) 취소에 이어 적자국채 발행을 청와대가 요구한 배경에 대해 신 전 사무관은 “박근혜 정부의 국가채무비율을 높이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세수초과 상황에서 국가채무 줄이기를 포기하고 대신 적자를 늘리는 배경에 ‘정무적 판단’이 자리잡았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2017년은 문재인 정부 첫해 국가채무비율이 되는 것이어서 그럴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실제로 해당 연도 적자규모에 꼭 맞춰서 적자국채를 발행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장 상황이나 조달비용 등에 따라 국채 발행 시점을 조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의 발언을 해명하며 ‘세계잉여금 확보’를 청와대의 적자국채 추가 발행 주장 배경으로 설명했습니다. 남는 예산인 세계잉여금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이듬해 차례로 지방·교육 교부금 정산, 공적자금상환기금 출연, 국가채무 상환 등에 쓸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 등 확장적 재정운용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기재부의 보수적 세수 추계로 남게 된 국채 발행 한도를 최대한 활용해 적자국채를 발행한 뒤, 이를 이듬해 확장적 재정운용을 위해 사용하려던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해도 논란은 남습니다. 국가채무가 늘더라도 재정지출이 필요한 경제·사회적 이유를 내놓고 설득한 뒤 확장적 재정운용을 펼치는 정공법 대신 일종의 꼼수를 부린 셈이기 때문입니다. 2017년 한도가 남은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용히 채무를 늘려 세계잉여금을 확대한 뒤, 2018년 추경에서는 “세계잉여금을 활용하므로 국가채무 증가가 없다”고 강조할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 추경을 편성하며 “국가채무 증가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4조원 적자국채 발행 계획이 이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추가 국채 발행에도 나서지 않으면서 지난해 추경은 3조9천억원 수준의 ‘미니 추경’에 그쳤습니다
기본적으로 확장적 재정운영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국가채무 증가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는 부담을 느끼는 청와대와 정부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읽힐 여지도 있습니다.
해명 없는 의사결정 과정
신 전 사무관 주장의 핵심은 적자국채 증가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이었습니다. 적자국채 발행과 관련해 청와대가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대해 기재부 쪽은 “초과세수 상황에서 기재부 내부는 물론 청와대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있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고 결국 국고국이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으니 문제가 될 상황은 아니다”라는 입장입니다.
다만 문제는 그 ‘정도’입니다. 신 전 사무관의 주장을 요약하면 △적자국채 추가 발행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대통령 보고가 막힌 채 청와대가 결정을 내려놓았고 △이미 배포된 보도자료에 대한 청와대의 수정 요구가 있었으며 △이 과정에서 부총리와 경제수석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주장이 사실이라면 ‘치열한 내부논의’ 수준을 넘어 각 기관이 서로를 견제하는데만 골몰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일들이지만 청와대는 현재까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기재부 역시 “청와대의 강압은 없었다”는 해명 이외에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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