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기획] 제조업 패러다임 바꿔야 산다
소재·부품 절반이상 ‘수입’ 원천 경쟁력 취약
스마트공장 3만개 중기 생산성 높인다지만
빅데이터·로봇기술 치중…도요타 ‘숙련노동’ 중심
혁신패러다임 “사람에 더 투자해야” 지적 나와
소재·부품 절반이상 ‘수입’ 원천 경쟁력 취약
스마트공장 3만개 중기 생산성 높인다지만
빅데이터·로봇기술 치중…도요타 ‘숙련노동’ 중심
혁신패러다임 “사람에 더 투자해야” 지적 나와
국내 대기업들이 주로 쓰는 고기능 소재와 핵심 부품장비들의 국산화 비율은 얼마나 될까?
전체 제조업에서 소재·부품 등 중간 투입재의 국산화 비율은 54%(2014년·한국은행)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경우 부품·소재 국산화율은 더 떨어진다. 2017년 기준 해외수입 의존도를 보면, 반도체 장비 70%, 디스플레이 장비 75%, 특수목적기계 40%, 일반목적기계 27% 순서다. 국내 제조업은 국산화 비율이 매우 낮은 이른바 ‘수입 유발형 생산구조’인 셈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가 “국내 제조업의 성장 전략을 선도적이고 자율적으로 수립하기 어렵게 하는 장애와 한계로 작용”(정은미 산업연구원 성장동력산업연구본부장)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국 제조업 부가가치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밑에서 7번째(25.5%/2016년)로 낮은 배경 중 하나다.
제조 생태계에서 중간 투입재 생산은 주로 중소기업들의 몫이다. 제조 중소기업은 41만1천개(종사자 수 318만3천명)로, 국산 소재·부품의 품질 혁신이 곧 제조업 활력의 원천인 셈이다. 제조업 혁신이 안정적·지속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중소 부품협력업체의 노동생산성을 기반으로 ‘건강한 산업생태계’가 우선순위로 꼽히는 까닭이기도 하다.
정부도 이런 점에 주목해 중소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정책 대안을 내놓고 있다. 2022년까지 제조 중소기업에 ‘제조 데이터 분석·활용이 가능한 지능형 스마트공장 3만개를 구축한다’는 게 대표적이다. 2014년부터 시작된 스마트공장은 지난해 말까지 7800곳에 보급됐는데, 10명 이상 중소 제조기업 6만7천곳 중 스마트공장을 희망하는 모든 기업(약 3만2천개·48%)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매출액 100억원 미만인 중소기업의 당기순이익은 평균 7천만원 미만(2018년)으로, 스마트공장 구축 비용(평균 2억7천만원)을 감당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협력하는 ‘상생형 스마트공장’의 경우 정부·대기업이 각각 30%, 중소기업이 40%를 분담한다. 산업은행 등은 올해부터 스마트 설비투자자금 2조원을 지원하고, 3천억원 규모의 스마트공장 구축 투자펀드도 조성한다.
스마트공장의 생산성은 어떨까? 중소벤처기업부가 스마트공장을 도입한 기업 5천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한 결과를 보면, 시간당 노동생산성(물적 생산량)이 스마트화 이전에 비해 평균 30.0% 증가했다. 생산성 향상 요인으로는 우선 불량률 감소가 꼽힌다. 중기부 쪽은 “스마트공장마다 어느 파트에서 불량이 발생했는지 추적하는 디지털 디비가 구축된 이후 제품 불량률이 평균 43.5% 낮아졌다”며 “현장노동자의 숙련도는 불변으로 놓고 생산성을 측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즉 ‘생산성 30% 증가’의 대부분이 디지털 장비 등 기술적 요인에서 발생한 셈이다.
스마트공장 전략은 이처럼 벤처 창업이나 빅데이터·인공지능 통합시스템 구축 등 ‘지능화 기술’에 주로 치중하고 있다. 정부는 스마트공장 구축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면서 스마트공장 고용이 평균 2.2명 증가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에 따른 노동자 대체나 기존 노동 숙련의 약화·퇴장 또한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의 스마트공장 전략에 ‘사람의 생산성과 노동의 숙련도를 중시하는 관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마련 중인 ‘제조업 르네상스 산업정책’ 보고서(초안)는 “스마트공장뿐 아니라 스마트 일터가 이뤄져야 한다”며 “새로운 숙련직무등급제 도입 등 현장 숙련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쌓은 사람에게 공정한 대우와 임금 보상이 이뤄지는 원리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산업 현장에 숙련된 노동이 집적되어야만 산업 내부에서 기술이전이 촉진되면서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도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화 기술 중심의 생산성 향상뿐 아니라 현장노동자의 숙련이 창출하는 생산성 향상, 즉 ‘숙련 스마트’ 쪽으로 정책을 보완하고 정교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도 2022년까지 ‘스마트 제조 전문인력 10만명’ 양성 방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기존 생산인력을 스마트공장 ‘운영인력’으로 전환한다는 것이어서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미 국내 제조산업의 ‘자동화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로봇 보급률에서 세계 1위, 정보통신기술 인프라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다. 세계로봇연맹(IFR)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제조업 노동자 1만명당 로봇 도입 수는 701대(2017년)로 2011년(347대) 이래 압도적인 세계 1위를 지속하고 있다. 연맹은 “한국이 전기·전자 및 자동차산업 중심으로 대규모 로봇 자동화를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로봇 보급률은 자동차 대국인 독일(322대)·일본(308대)에 견줘 두배 이상 높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일본이다. 2009년(331대)에서 2016년 301대로 감소하는 등 지난 10여년간 300대 안팎을 오르내리며 정체돼 있다.
그 까닭은 도요타가 잘 말해준다. 도요타는 인공지능·로봇의 발달에도 여전히 ‘사람의 생산능력’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을 견지한다. 문용권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도요타는 지난해 50년간 근무한 중졸 생산직 출신의 가와이 미쓰루를 생산담당 부사장으로 승진시켰다. 현장의 숙련 인력을 중시하면서 ‘대기업병’을 씻어내고 기술·경영 혁신을 이뤄내는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공장의 주류적인 생산방식은 로봇 자동화가 아니라 ‘사람의 숙련·지혜가 내재되어 스스로 일하는 기계’라는 뜻의 ‘인변 자동화’를 추구한다. 현장 노동 숙련에 기반한 ‘적절한’ 스마트공장이 일본차가 비교우위로 갖는 품질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협업’을 내건 스마트공장이 혁신적 산업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려면 원-하청 공정거래에 대한 정책적인 고민도 함께 담겨야 한다. ‘적정한 납품단가 보장’으로 생태계가 교정돼야 중소 제조업체도 생산성과 품질 향상에 나설 유인이 커지기 때문이다. 스마트공장 혁신을 통한 ‘30% 생산성 향상’의 과실이 어떻게 배분되고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중기부 관계자는 “생산성 향상으로 스마트공장 노동자들의 임금 조건이 나아진 건 분명하지만, 생산성 향상분을 놓고 대기업 원청이 납품단가 조정을 어떻게 하는지는 아직 알기 어렵다. 생산성이 좋아졌으니 납품단가를 낮추자고 요구하는 원청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스마트한 시스템과 생산방식이 도입되더라도 ‘상생적 생태계’가 이뤄지지 않으면 제조 중소기업의 지속가능한 혁신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정은미 본부장은 “제조업 전략에 제품과 공정혁신뿐 아니라 건강한 생태계 구축 방안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계완 홍대선 기자 kyewan@hani.co.kr
2017년에 중소기업 마팔하이테코(경기도 시흥)에 구축된 스마트공장 현장.
2017년에 중소기업 마팔하이테코(경기도 시흥)에 구축된 스마트공장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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