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와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관계자 등이 만나 반도체 산업 현황을 논의한 내용의 일부가 유출됐다. 반도체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가격 하락 전망, 업체의 투자 계획 등이 담겼다. 기재부는 모인 사실은 인정했지만 “전반적 의견청취였을 뿐 구체적인 기업 상황을 논의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은 최근 2년간 국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등 거시 경제를 이끌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으로 수출액이 급감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와 업계의 만남은 이런 상황을 점검하고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8일 기재부와 반도체 업계 등 얘기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삼성전자·SK하이닉스 : 기획재정부와 미팅내용 요약’이라는 제목의 짧은 요약문이 업계 관계자들과 기자들의 카카오톡 등을 통해 공유됐다. 요약문은 “어제 기획재정부와 삼성전자, 하이닉스 관계자들과 미팅을 했다”며 모임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소개했다. 요약문은 모임에 참가한 한 증권사 직원이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약문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1분기 수요 매우 터프하다. 디램(DRAM) 가격 최소 20% 이상 하락할 것 같다. 30% 가깝게 하락할 수도 있다. 매출액 역시 최소 10% 이상 하락 가능성이 높다. 보통 분기 한 달 전에 분기 계약 가격 협상을 완료하는데, 1분기 협상이 아직도 안 되었다. 환경이 너무 빨리 바뀌기 때문이다. 서버, 모바일 등 고객들의 구매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2. 데이터센터 업체들의 구매 지연을 분석해보면, 재고 이슈인 것 같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이 자체 보유한 메모리 재고가 많다. 작년 투자 늘어날 때 이들끼리 경쟁 때문에 재고를 과도하게 확보한 것 같다. 다만 이들의 태도가 과거와 다르다. 과거 같으면 현재같은 바이어마켓에선 고객이 제조 업체에게 공격적으로 대한다. 하지만 지금은 향후 다시 쇼티지(부족)가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 기회에 관계를 잘 형성해서 나중에 손해 보지 않겠다라는 분위기다. 우호적이다. 재고가 줄어들면 언제든지 다시 구매할 수 있다고 한다.
3. 삼성전자에 이어 SK하이닉스도 작년 연말 수립한 올해 경영 계획을 최근에 수정했다. 올해 투자 크게 줄일 계획이다.
4. 작년 수출 6천억불 달성했다. 올해는 반도체 경기 둔화 때문에 수출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서 매우 신경 쓰고 있다. 2019년 수출이 준다면 이번 정권 집권 이후 처음이다. 상대편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최근 정부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관계자들을 하루가 머다하고 호출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올해 M/S(마켓셰어) 때문에 공격적으로 투자한다면 정부의 이러한 의지에 어긋난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정부의 요구로 인해 투자를 늘린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다.
5. 2분기 인텔 신규 CPU 출시 매우 기대하고 있다. 인텔이 수요를 긍정적으로 보고 투자를 늘리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다. 2분기 신규 CPU 출시와 함께 데이터센터 업체들이 투자를 늘리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반도체 수요 감소 현황 등을 담은 1번과 원인을 분석한 2번, 이에 대한 업체의 대응을 담은 3번은 기존 현상을 다룬 것으로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디램 가격은 최고점 대비 20% 가까이 떨어졌고, 미·중 무역 분쟁으로 인한 세계 경제 불안과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정보통신 업체들의 투자 축소 등이 원인으로 거론돼 왔다. 또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지난해 중후반부터 “내년부터 반도체 투자를 올해와 다르게 조정(축소)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올 2분기 이후 전망을 담은 5번 역시 긍정적 전망을 담은 것으로 민감하지 않다.
민감한 내용은 정부와의 조율 내용을 담은 4번이다. ‘반도체 수출 감소로,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처음으로 올해 수출이 줄어들 수 있고, 이는 정치적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은 자칫 정부가 정치적 이유로 반도체 업계에 매출 증대 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이날 별도 공지를 내어 “통상적인 전문가 간담회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기재부는 “간담회에서 글로벌 반도체 시장 동향과 전망을 중심으로 논의했고, 구체적인 기업 투자계획이나 수출 전망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밝혔다. 아래는 기재부가 공지한 내용이다.
공지> 기자분들 문의가 이어지고 있는 반도체 전문가 간담회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알려드립니다.
1. 최근 반도체 시장에 대한 업황과 향후 전망에 대한 의견 청취 및 정보공유를 위해 1.16일 기재부 1차관 주재로 협회, 업계, 관련 전문가 등과 간담회를 가진 바 있으며, 이는 시장상황 등을 파악하기 위한 통상적인 전문가 간담회의 일환임
2. 동 간담회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 동향과 전망을 중심으로 논의가 있었으며, 구체적인 기업들의 투자계획이나 금년도 전체 수출전망에 대한 논의는 없었음
- 기재부 대변인실
기업들 역시 “유출된 내용 중에 우리가 얘기하지 않은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며 “문건을 작성한 증권사 관계자의 의견이 많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해당 요약문을 작성한 직원은 반도체 업계를 통해 “내부 보고용으로 만든 것인데 밖으로 나가 당황스럽다”며 “본인의 주관적 의견이 상당수 담겼다”고 밝혔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