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올 들어 적극적인 대내외 공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이낙연 국무총리 등 최고 권력자들과 공식 만남이 잦아졌고, 국내 사업장을 찾아 사업방향을 지시하고 있다. 정부 행사에서 “아들·딸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고도 말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3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이 부쩍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부회장은 올해 문 대통령 주관 행사에만 두 차례 참석하는 등 재계에서 정부 핵심인사와 가장 자주 만났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문 대통령의 신년인사회 참석을 위해 내부 일정을 변경했고,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기업인과의 대화’에는 5대 기업 총수들과 함께 참여했다.
지난 10일 이 총리가 “불쑥 와서 미안하다”며 삼성전자 수원공장을 방문했을 때 이 부회장은 공개적으로 이 총리를 맞이했다. 이때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사장) 출신으로 일선 후퇴를 선언했던 이인용 삼성전자 사회봉사단장(상근 고문)이 두드러지게 이 부회장 곁에 자리한 장면이 삼성 안팎에서 주목받았다. 미래전략실 해체 뒤 구심점 없이 혼란스러웠던 그룹 체계가 일부 미전실 출신 핵심 인사들을 중심으로 재정비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2년간 누락했던 신년 경영 행보도 정상화됐다. 지난 3일 경기 수원 5세대(5G) 통신장비 생산라인 개소식에 참석했고, 4일에는 용인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 이 부회장은 다음달 중국 반도체 공장 방문도 계획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확실히 여유를 찾았다고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은 15일 청와대 행사에서 공식 발언 기회를 얻어 “대한민국 1등 대기업으로서, 작년에 숙제라고 말씀드린 ‘일자리 3년간 4만 명’은 꼭 지키겠다. 두 아이 아버지로서 젊은이들 고민이 새롭게 다가온다. 소중한 아들·딸들에게 기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산책행사 때도 문 대통령에게 ‘공장을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반도체 경기 우려에 대해 “이제 진짜 실력이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한 5대 그룹 소속 임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공여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3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부회장이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고 얘기했다. 완전히 자신감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와 이 부회장의 잦은 만남은 양쪽의 요구와 필요가 서로 맞아 떨어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제 문제’로 위기감이 팽배한 정부는 국내 수출의 20% 가까이를 차지하는 삼성전자의 투자와 성과가 필요하다. 정부는 삼성을 통해 재계에 뚜렷한 ‘친화적 메시지’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새로 취임한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에게까지 기업을 적극적으로 만나라고 지시했다.
이 부회장도 정부의 호출과 만남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3심 재판이 진행 중이고,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조작 사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사건 등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다.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이 부회장은 정부와 잦은 접촉을 통해 정상 경영자라는 이미지, 어려움에 빠진 한국 경제를 떠받칠 대들보라는 이미지를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원칙은 흔들리고 있다. 15일 행사 때 청와대는 불법·비리 혐의로 재판 중인 조양호 한진 회장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불구속 상태에서 2심 재판 중인 이중근 부영 회장은 빼고,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이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은 참석시켰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참석자를 결정했다”고 한발 빼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실형이 확정되거나 재판중인 대상은 제외했다”고 밝혔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집행유예도 명백한 유죄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운 것도 맞지만, 이번 정부는 공정을 기치로 내걸고 출범하지 않았냐. 최소한의 원칙과 기준을 갖고 이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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