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발표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부양에 있는 것이 아니고 국가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입니다. … 당장 1년을, 1~2년의 경기부양을 두고 이 작업이 추진됐다기보다는 10여년의 안목을 보고 사업을 추진했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가 29일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를 통해 24조1천억원 규모의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대상 23개 사업을 발표하면서 가장 앞세운 것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사업의 궁극적인 지향점이었다. 과거 보수정부가 예타를 면제하면서 추진했던 ‘30대 선도 프로젝트’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토건사업들과 달리, 이번엔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순수한 목적’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2019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 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홍 부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합동 브리핑에서 과거 보수정부 시절 추진된 예타 면제 사업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지역전략산업 육성 지원과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사업들을 포함시키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늘 발표된 23개 사업은 최대 2029년까지 연차적으로 추진돼 중장기적인 재정 운용에서도 큰 부담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날 △인공지능 중심 산업융합단지 조성(광주) △상용차 혁신성장 생태계 구축(전북) △지역특화산업 육성 등 연구개발(R&D) 투자와 결합된 지역전략산업 육성책도 함께 내놨다. 경기부양을 위해 국토를 막개발하는 ‘묻지마 토건사업’이 아니라는 근거는 마련한 셈이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타 면제 사업 추진을 둘러싼 논란이 진화될지는 미지수다. 정부가 내놓은 지역산업 육성책 가운데 상당수는 ‘구색 맞추기’ 수준에 불과한데다, 전체 사업에 책정된 예산 24조1천억원 가운데 20조원가량이 전형적인 토건사업인 탓이다.
전문가들은 먼저 이번 대규모 예타 면제가 개발연대 시절 토건사업으로의 회귀라는 비판을 내놨다. 박복영 경희대 교수(경제학)는 “미세먼지 저감 인프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노후시설 정비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환경친화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을 구상할 수도 있을 텐데 그런 노력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사회경제적인 기대효과를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지 않고 4대강 사업과 같은 전형적인 토목사업을 선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선정한 후보 사업 가운데 예타 면제 대상을 골라내는 ‘보텀업’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새로운 상상력’이 가미된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지적이다.
국가균형발전의 효과 자체가 의문스럽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개발)는 “산업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지방산업단지에 전통적인 제조업 공장을 유치하는 일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구조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주요 산단에 도로와 철도를 잇는 인프라 투자로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구상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국가균형발전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에스오시 투자와 균형발전을 등치시키는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기재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국토 면적당 도로연장이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고속도로 1위, 일반 국도 2위, 전체 도로 6위 등으로 인프라 포화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다. 철도와 도로 연결 중심으로 구성된 예타 면제 사업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체감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결과적으로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에스오시 투자를 택하는 ‘익숙한 실패의 길’을 되풀이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1990년대 일본에서 자산 거품이 꺼진 뒤 과잉 투자된 부분을 구조조정하기보다 에스오시 사업을 통해 경기부양을 시도했다”며 “문제는 이런 부양책을 통해 한계에 도달한 건설업 등이 좀비기업으로 연명하게 됐고 자본의 효율성과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도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30년 동안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는 등 엄청난 에스오시 투자를 했지만 경기 활력을 높이는 데는 실패했다”며 “정책적 가중치를 반영한 예비타당성조사를 통해 순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사업을 굳이 예타 면제라는 방식으로 동시다발 추진해 재정부담만 더욱 가중시키는 꼴”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국책사업이 동시에 진행될 경우 기자재와 공사 비용이 상승할 수 있어 전체 예산 지출 규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현웅 방준호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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