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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일본 증권업계 ‘걸리버’ 노무라의 고민

등록 2019-02-13 08:59수정 2019-02-13 22:26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증시 약세 맞물려 수수료 급감
거래서 자산관리로 ‘과녁’ 이동
일본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에 있는 노무라증권 본사 건물. REUTERS
일본 도쿄 주오구 니혼바시에 있는 노무라증권 본사 건물. REUTERS
일본 증권업계 부동의 1위는 노무라증권이다. 그 밖의 증권사와 체급이 달라 ‘걸리버’로 불린다. 일본을 대표하는 노무라증권이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모회사인 노무라홀딩스는 2018년 큰 폭의 반기 적자를 기록했다. 노무라증권의 최대 장기인 국내영업 또한 갈수록 나빠지는 환경을 맞았다. 손꼽히는 글로벌 증권사를 꿈꾸는 노무라에는 새로운 출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일본 언론들에 따르면, 노무라홀딩스는 2018년 3~9월 60.1억엔 손실을 입었다. 2011년 이후 7년 만의 상반기 적자다. 전년 같은 기간 1087억엔(약 1조1200억원) 흑자에서 급반전한 것이다. 주택융자 담보증권의 부정 판매와 관련해 미국 사법부에 4억8천만달러(약 5370억원) 화해 비용을 낸 것이 주된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다.

노무라에 더 우려스러운 일은 어쩌다 발생하는 이런 일시적 지출이 아니다. 증권사의 주된 수익원인 각종 거래 수수료 수입이 급감하는 것이다. 기관투자가와 법인고객 대상 수입은 전년 동기 423억엔에서 20분의 1 가까운 수준인 25억엔으로 줄어들었다. 최대 수입원인 일반인 대상 소매업에선 실적이 36%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5대 증권사 가운데 노무라만 영업이익이 전년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다이와와 SMBC닛코는 소폭 감소, 미즈호 등은 조금 늘었다고 일본 경제주간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가 최근호에서 전했다. 영업이익 감소에는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증시 약세와 미국의 금리 인상에 따른 신흥국 통화 폭락 등이 큰 영향을 끼쳤다. 2018년 일본 주식시장 또한 투자자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 못했다.

출구 찾기 고민

지금까지는 고객이 주식이나 다른 금융상품 매매를 빈번하게 하도록 해 거래 수수료를 받는 중개 업무가 일본 증권사의 주력 업무였다. 거래 수수료 수입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증권사들은 자산관리 업무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다. 고객이 운용을 맡긴 자산을 늘리고 자산총액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것이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로 나이 든 고액 자산가가 크게 늘어난 상황이 이런 전략에 가속도를 붙였다.

노무라는 규모에 비래해 ‘체질 전환’에 따르는 고민이 컸다. 노무라는 주식이나 투자신탁 위탁과 모집 수수료 등 중개 수입으로 일본 대표 증권사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새로운 방향 설정이 끝나자 자산관리 쪽으로 옮겨가는 속도는 노무라가 가장 빨랐다. 노무라는 수익이 크게 줄어드는데도 매출 목표를 부과하지 않는 영업 직종을 새로 만들었다.

새 직종 이름은 ‘진심 파트너’다. 2017년 4월 시범 도입 이후 1년이 지난 2018년 4월 전국 149개 지점, 180명 규모로 늘렸다. 이들은 나이 든 고객을 전문적으로 응대하는 직원이다. 고객과 장기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한 지점에서 오래 근무한다.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자산관리의 전반을 아우른다.

이들에겐 금융상품 판매 같은 실적 목표가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긴밀한 고객 관계를 통해 운용을 맡긴 자산 이탈을 막는 것이 주요 임무다. 위탁 관리를 하는 자산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평가 대상이다. 이 때문에 진심 파트너의 고객 응대는 일반 창구 직원과 차원이 다르다. 자산을 맡긴 고객이 영업점을 방문하면 필요한 금융 업무만 보고 끝나지 않는다. 이들 파트너와 함께 일상생활이나 자식 근황 등 이런저런 대화를 하느라 1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금융상품에 관한 설명이나 상담 등은 전혀 하지 않는다. 충분한 시간 동안 사소한 얘기를 나누다보면 고객 만족도가 쑥쑥 올라가는 것이다.

금융자산의 ‘실세’

중개 업무가 주력이던 시절에는 고객 자산 가운데 일부 투자금만 있어도 충분했다. 주식 매매 등 거래가 잦아 수수료로 큰 수익을 올리는 게 가능했다. 이와 달리, 자산관리 업무 수입은 맡긴 자산에 정해진 수수료율을 곱한 것이다. 투자 위험을 감수하는 일부 자금 정도로는 수익을 늘릴 만한 금액이 못 된다. 고객이 은행 등 다른 금융기관에 맡겨놓은 자산을 자사 계좌로 옮기도록 만드는 데 증권사 운명이 달렸다. 다양한 자산관리 서비스 강화 방안이 필요한 것이다.

고객 가족도 소홀히 할 수 없다. 나이 든 고객의 보유 자산은 머잖아 증여나 상속을 통해 자녀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이때 자녀 세대가 거래하는 다른 금융기관으로 증여·상속 자산이 넘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증권사들이 자녀 세대와 관계를 두텁게 하려는 이유다.

일본의 가계 금융자산 현황을 보면, 60대가 전체 저축액의 32%, 70대 이상이 33%를 보유하고 있다. 60대 이상 비중이 3분의 2에 이른다. 나이 든 고객의 유가증권 보유 비중은 75%를 넘는다. 60대가 35%, 70대 이상이 41%다. 자산관리에 힘을 쏟아야 하는 증권사들로선 나이 든 고객과의 접점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일본 가계의 순자산은 2017년 말 기준으로, 1560조엔(약 1경6천조원)에 이른다. 유형별로는 현금과 예금(51%), 보험과 연금(28%), 주식 등(17%)으로 이루어졌다.

‘금융노년학’ 도입

단기적 수익을 좇아서는 나이 든 고객 신뢰를 얻기 힘들다. 자산 설계와 승계, 주거 등을 편하게 상의할 수 있는 상담자 역할을 하며 밀착 서비스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노무라는 업계 처음으로 게이오대학과 손잡고 금융노년학 공동연구에 들어갔다. 금융노년학이란 인지 기능이 떨어지는 고령기와 고령화 과정을 연구하는 노년학과 금융연구를 결합한 용어다. 장수가 경제활동과 사회활동에 끼치는 영향을 의학, 경제학, 심리학 등 여러 방면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주식투자 등 금융 행위에는 여러 가지 추상적 사고 작용이 필요하다. 나이 든 고객은 인지 기능 쇠퇴에 따른 제약을 피하기 어렵다. 노무라연구소 관계자는 “본인 의사를 살려 유효한 자산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려면 학제적 대처가 필요하다”며 “금융노년학을 제대로 공부하면 고객 대응이 완전히 달라진다”고 말했다. 노무라는 게이오대 의학부와 경제학부 교수들을 강사로 초빙해 진심 파트너 교육을 위한 연수회를 정기적으로 연다. 다이이치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치매(인지증) 환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이 2015년 기준으로 전체의 7.2%인 127조엔(약 1300조원)에 이르렀다. 2030년에는 10%를 웃도는 215조엔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박중언 부편집장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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