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여형구 전 국토교통부 2차관이 2014년 2월 정부서울청사에서 ‘가계부채 구조개선 촉진방안’을 발표한 뒤 기자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은 19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2014년 하반기 가계신용 팽창은 주택·금융 등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경기부양에 나선 결과라고 짚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경기부양 등 정치적 목적에 따른 단기 처방이 거듭된 결과 가계부채 관리에 실패해 왔다는 국책연구기관 진단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19일 발표한 ‘거시건전성 관리에 있어 단기성과 중심 정책결정의 위험성’ 보고서에서 그간 거시건전성 관리 대책이 경기부양 및 단기 성장률에만 초점을 맞추느라 가계부채의 위험도를 낮추는데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먼저 가계부채가 오랫동안 한국 경제의 핵심적인 위험요인으로 지목돼 왔지만 금융당국의 관리는 우려를 해소하는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2008년 3분기 713조원 수준에 머물던 가계부채 총량이 2018년 3분기 1514조원으로 2배 이상 늘었고, 2014년 하반기 이후 급속도로 가계신용이 팽창해 신용과잉 상태에 놓이게 됐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다수의 국가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뒤 가계부채 조정을 겪으며 거시건전성을 개선한데 비해, 한국의 가계부채는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며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경제의 체질을 고려할 때 가계부채의 위험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런 거시건전성 관리 실패의 원인으로 선거 등 정치 일정에 터 잡은 단기 정책의 추진과 경제성장률 실적 등 경기부양에의 유혹에 빠졌던 점을 들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와 2003~2004년 ‘카드대란’ 당시 내수부양을 우선시하는 정책 기조가 건전성 규제 필요성을 압도한 것이 대표적이다.
보고서는 특히 “2014년 하반기 이후 경제성장률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 주택·금융 등 가용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내수를 부양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한국 금융 시스템의 핵심 리스크로 지목됐던 가계부채의 관리 필요성은 도외시됐다고 지적했다. 대통령·국회의원·지방선거 등이 1∼2년 주기로 빈번하게 치러지다 보니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정책 결정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영일 연구위원은 “가계부채 등 민간 신용은 내수부양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제 주체의 건전성과 회복력을 훼손할 수 있다”며 “가계 소비 정상화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등을 살펴야 하므로 아직 판단이 쉽지 않지만 최근의 대출 강화 추진이 방향성은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이어 거시건전성 관리체계를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거시건전성 감독 기관의 책임성과 독립성을 강화해 단기 처방에 매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에 대한 판단에 정량적 지표를 활용하도록 준칙을 마련하고, 감독 기구 의사결정권자의 재임 기간을 법정화 하거나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김 연구위원은 “금융정책은 공공이 맡고, 감독은 민간이 맡아 책임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이원화 구상도 하나의 흐름으로 볼 수 있다”며 “중앙은행이 거시건전성 정책을 수행하는 영국 등 유럽의 관리 체계도 시사점이 있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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