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협의회’가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하청업체들이 부도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하게 납품을 중단할 시 형사처벌을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하청업체 납품중단시 형사처벌 금지 입법 청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 1월초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현대차 2차 협력사인 태광공업 전 경영진의 가족들이 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현대자동차 2차 협력사들이 오랫동안 갑질에 시달리다 부도위기에 처해 부품공급을 중단한 것에 대해 법원과 검찰이 공갈죄로 처벌하는 것은 대기업 갑질의 ‘도우미’를 자처하는 일이고, 국가형벌권의 과잉발동이라고 여야 국회의원이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26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자유한국당 성일종 의원과 공동개최한 ‘하도급 전속거래구조에 있어 국가 형벌권 행사의 비대칭성’ 세미나에서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에도 거래가 끊어질까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다가 부도위기에 처한 중소기업이 납품중단을 실행(또는 통보)한 뒤 협상을 통해 회사 경영권을 팔거나 손실보상을 받은 것에 대해 법원과 검찰이 공갈죄로 처벌하는 일이 2009년부터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16건이 넘는다”고 밝혔다. 이어 “수직적 갑을 관계에 대한 제도적 개선 없이 하청업체만 처벌하는 것은 국가형벌권의 과잉발동”이라며 “법원과 검찰이 대기업의 갑질 도우미로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대구고법 형사1부(재판장 박준용)는 지난 1월 말 현대차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에 부품을 공급하던 태광공업 손정우 전 사장 부자에게 징역 4년과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대전고법 형사1부(재판장 권혁중)는 지난해 10월 역시 현대차 1차 협력사인 한온시스템에 부품을 공급하던 대진유니텍 전 대표에게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추 의원은 이에 앞서 국회 정론관에서 ‘자동차산업 중소협력업체 피해자협의회’와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부도위기에 처한 하청업체가 납품중단을 할 경우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을 3월 초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고용진 의원은 “하도급 갑질 피해자가 형법상 가해자로 둔갑해버리는 판결은 을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이라며 “완성차업체들이 협력업체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고소?고발로 옥죄는 것은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더욱 가중시킬 것”이라고 비판했다. 성일종 의원도 “힘없는 중소 협력업체들의 권익을 제대로 보장하기 위해 국회가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발제에서 “법원과 검찰이 자동차산업의 수직적 생산구조하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완성차업체와 1차 협력업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을의 지위에 있는 2차 협력사들을 형사처벌로 옭아매면서 갑질행위의 조력자 역할을 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세계 자동차산업에서도 부품업체들의 공급중단행위를 공갈죄로 형사처벌한 예는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강자의 갑질 방지와 약자의 정당한 이익 보호는 현 시대정신인데, 법원과 검찰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제부터라도 대법원 판결은 전체 자동차산업의 체질·역량을 강화하고 공정성장·동반성장의 기반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내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자로 나선 윤동호 국민대 교수는 “대기업인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에 (회사 인수 또는 손해배상 명목으로) 돈을 준 것은 공갈협박 때문이 아니다”라며 “기본인권 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의 사명을 저버린 변호사의 자문을 받은 기획된 고소로 의심된다”고 지적했다. 태광공업과 대진유진텍을 공갈죄로 고소한 현대차 1차 협력사인 서연이화와 한온시스템의 법률 대리인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소속이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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