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월 23일(현지시각)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49차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년 장기불황’을 겪어온 일본경제가 아베 신조 제2차 내각 출범 이후 지난 1월까지 74개월째 확장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제2차 대전 이후 최장 확장국면(73개월·2002년2월~2008년2월)을 경신한 바탕에는 엔화 약세와 대규모 통화 완화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가 있다. 그러나 일본경제는 신흥국 통화불안과 국제유가 하락 등 대외요인이 부상하면서 ‘인구 1억2천만명 내수시장 기반’인 경제체제에서 대외 수출의존 경제로 바뀌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무역질서 재편을 놓고, 미-중 무역분쟁에 이어 미-일 무역갈등도 점화되고 있다. 일본경제는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 이후 5차례의 경기확장국면이 이어졌다. 첫 번째는 ‘잃어버린 20년’ 터널에 막 진입한 것으로 사후적으로 확인됐던 1993년 11월~1997년 5월이다. 두 번째는 1999년 2월~2000년 11월, 세 번째는 2002년 2월~2008년 2월, 네 번째는 2009년 4월~2012년 3월이다. 지금은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때(2012년 12월)부터 시작된 다섯 번째 확장국면이다. 하지만 확장의 강도(모멘텀)는 가장 약한 편이다. 지난해 일본경제는 분기별로 플러스와 마이너스 성장을 오가는 롤러코스터 경기를 보였다. 지난해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 증가율은 0.7%(일본 내각부)로, 2017년(1.9%)보다 크게 둔화했다. 잠재성장률(1.0%가량)을 밑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올해 일본경제 성장률을 0.9% 정도로 전망한다.
그 배경에는 수출의존도 상승이라는 일본경제의 질적인 변화가 있다. 동아시아 경제권에서 보기 드문 일본경제 특징인 ‘1억2천만명 내수(특히 가계소비)기반 성장’ 경제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고령화 국가인 일본의 인구는 2008년(1억2808만명)에 정점을 찍은 뒤 10년 연속 감소(1억2520만명·2018년 1월)중이고, 올 1월 현재 생산가능인구(15~64살)는 7484만명으로 사상 처음으로 총인구 대비 비율이 60% 아래(59.7%)로 떨어졌다.
인구구조 격변으로 내수소비 기반이 약화하면서 일본경제는 대외 수출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미약한 경제성장률에서 수출과 가계소비가 각각 차지하는 기여율은 지난 20년간 정반대 흐름이 확연하다. 5차례 경기확장국면에서 국내총생산 증가에 대한 수출의 기여율은 제1국면 21%→제2국면 25%→제3국면 54%→제4국면 45%→제5국면 45%로 커졌다. 같은 기간에 가계소비의 기여율은 40%→42%→37%→38%→20%로 줄었다. 지난 6년간의 아베노믹스에도 가계소비 회복은 여전히 부진하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는 일본경제의 최근 특징으로 ‘대외의존도 심화’를 꼽으며 “외국인의 주식·국채투자비율, 대외증권·직접투자 증가세 등 일본경제 전반에 걸쳐 대미국·중국을 중심으로 대외의존도가 크게 심화하고 있다”며 “대외여건이 악화하면 일본경제에 위기가 전염될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국내총생산에서 가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5%(2017년)다. 하지만 소비부진이 계속 발목을 잡자 일본 정부는 경제 동력을 ‘수출’로 설정하며 총력지원에 나서고 있다. 일본 등 11개국이 참여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12월30일 발효), 일본과 유럽연합(EU) 사이의 자유무역협정(FTA)인 경제동반자협정(EPA·2월1일 발효)이 대표적이다. 최근에 두 무역협정을 잇따라 출범시키면서 글로벌경기 둔화와 보호무역주의 확산에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는 “일본은 (미-중 무역협상이 끝나는 대로 시작될) 미-일 무역협정에서 CPTPP를 미국과의 통상 갈등에 대응할 카드로 삼고, CPTPP와 EPA 발효를 계기로 글로벌 무역질서 개편의 주도권을 확보하려 할 것”으로 내다봤다. 목전에 임박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일본 무역협상 청구서’는 도요타 자동차에 대한 미국시장 수입규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자동차·부품은 일본의 미국시장 전체 수출액의 36.6%(2017년)를 차지한다. 미국은 또 2013년 4월부터 시작된 아베노믹스 통화완화 조처를 두고 “엔 약세 유도를 목표로 한 사실상의 환율조작”이라며 ‘엔화’까지 쟁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노믹스의 통화완화 기조도 난관에 직면하고 있다. 일본 중앙은행은 2013년 4월부터 ‘물가상승률 2% 달성’을 내걸고 연간 50조엔에 달하는 국채 매입에 나서고 2016년에는 시장이 전혀 예상치 못한 마이너스 금리까지 도입하는 등 대담한 통화금융 완화로 엔화 약세를 유도했다. 하지만 최근 신흥국 통화불안 등 대외요인으로 ‘안전자산’ 엔화 매수세가 이어지면서 엔화 약세를 유지할 힘이 약해지고 있다. 무역수지 흑자도 엔화가치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면서 금융완화 정책의 효과를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2013년 아베 정부 출범 뒤에 일본경제가 그 전의 ‘잃어버린 20년’에서 확실히 달라졌다”며 “하지만 엔 약세를 유도한 환율정책의 경우 미국의 금리 인상 이후 엔화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엔화가 오히려 절상 추세로 바뀌고 있고, 장기간의 통화완화정책 덕분에 (오랜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며) 물가가 어느 정도 오르는 듯했으나 국제유가가 떨어지면서 물가 오름세가 다시 주춤하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대외요인이 닥치면서, 통화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경제 변동성은 커지는 쪽으로 일본이 바뀌고 있다는 얘기다.
장기간의 제로금리 통화정책은 ‘금융부문 손실’이라는 부작용을 대가로 낳고 있다. 미즈호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초저금리정책이 장기화하면서 2016년~2018년 2분기까지 일본의 은행부문 소득은 7587억엔 줄었다. 이 몫의 대부분은 정부(6191억엔)와 기업(4423억엔)부문으로 이전된 것으로 분석된다. 즉 통화정책 선택의 어려움이 커지고, 통화완화 정책이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는 우려도 퍼지고 있다.
일본경제의 이런 구조적 변화 속에서 1인당 총생산·총소득 모두 우리가 몇 년 안에 일본을 추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명목환율이 아니라 양국의 물가 차이를 반영한 구매력평가(PPP)환율 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에 일본 4만6070달러(국제통화기금·2018년 10월 ‘세계경제 전망’), 한국 4만3210달러다. IMF는 2023년에 일본 5만1420달러, 한국 5만1010달러로 거의 같아질 것으로 예측한다. 역시 구매력평가환율 기준으로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017년에 일본 4만4850달러(세계은행), 한국은 3만8340달러다.
우리나라의 전 세계 수출액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5.0%(306억달러·2018년)다. 2018년 우리나라의 일본제품 수입액은 545억8800만달러다. 대일본 무역수지 적자는 2013~2018년 202억8천만~283억1천만달러에 이른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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