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용직 빈 일자리 수가 7년4개월 만에 가장 많이 감소하고, 5인 이상 중·대규모 사업체의 취업자 수도 13년1개월 만에 처음으로 줄어들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낼 만한 사업체들의 고용 역량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셈이다.
10일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를 보면, 지난 1월 말 기준 1인 이상 국내 사업체의 빈 일자리는 16만6700개로 한해 전보다 3만9717개 감소했다. 2011년 9월(-6만850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빈 일자리 수는 지난해 1월 2만5591개 증가한 이후 고용둔화로 인해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빈 일자리는 사업체 쪽에서 구인 활동을 하고 있고 한 달 이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일자리를 이른다.
빈 일자리 감소세는 통상 구직자와 구인 기업 사이의 미스매치가 해소되는 과정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최근 실업자 증가세와 겹쳐보면 사업체의 노동 수요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일 가능성이 크다. 구직에 적극적으로 나섰는데도 일자리를 못 구한 사람(실업자)은 늘었지만 빈 일자리는 줄어드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실업자 수는 전년동월 대비 20만4천명이나 늘어난 바 있다. 노인 일자리 신청자가 증가해 실업자로 분류된 노인 경제활동인구가 많아진 영향이 컸지만 15~64살 생산가능연령대 실업자 수 증가폭(9만4천명)도 최근 추세에 견줘 크게 늘었다. 특히 비교적 안정적인 상용직(1년 이상 계약기간)에서 빈 일자리가 크게 줄고 있다. 지난 1월 상용직 빈 일자리는 1년 전보다 3만3790개 감소했다. 역시 2011년 9월(-3만9691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이런 감소세는 제조업(-1만2761개), 도소매업(-9338개) 등을 중심으로 나타났다. 특히 제조업 빈 일자리 감소는 최근 디스플레이나 반도체 산업의 설비투자 감소와 관련된 것으로 풀이된다. 업황이 다소 나아지고 있는 자동차나 조선업(기타운송장비) 등의 상용직 빈 일자리 수가 소폭 증가하거나 감소폭이 둔화한 반면,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만들기 위한 기계 제조업이 포함된 ‘기타 기계 및 장비제조업’(-4659명)에서 상용직 빈 일자리 감소가 크게 나타났다.
상용직 빈 일자리 감소와 함께 중·대규모 사업장의 취업자 수 감소도 괜찮은 일자리 창출에 대한 우려를 키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보면, 지난 1월 기준 5인 이상 사업장 취업자 수는 한해 전보다 2만명 감소한 1681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취업자 수가 감소한 것은 2005년 12월(-4만8천명) 이후 13년1개월 만이다. 통상 경기둔화로 인한 고용악화는 노동자 지위가 불안정한 소규모 사업장이나 서비스 업종에서부터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흐름이 최근 중·대형사업장으로까진 번진 셈이다. 제조업의 경우 특히 100인 이상 사업장의 취업자 수 감소가 크게 나타났다. 같은 조사 원자료를 보면, 지난 1월 전체 제조업 취업자 수가 한해 전보다 17만명 감소한 가운데 100~299명 사업장(-4만1천명), 300명 이상 사업장(-5만7천명)에서도 큰 폭으로 취업자 수가 감소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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