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지(LG)하우시스는 2015년부터 독립운동 관련 후원활동을 하고 있다. 충칭 임시정부 청사 복원과 도산안창호기념관·만해기념관·안중근의사기념관·우당기념관·매헌기념관·서재필기념관 수리 등을 마쳤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의 주거지를 고쳐주는 일도 해왔다.
엘지는 이를 창업자 구인회(1907~1969년) 회장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은 ‘대 이은 나라사랑’이라고 홍보한다. 선대의 유지를 기리는 것은 훌륭한 일이나, 역사가 과장되는 것이라면 창업회장의 뜻은 아닐 것이다.
엘지가 내세우는 선대 독립운동 지원 활동은 크게 두 가지다. 창업자인 구인회 회장이 1942년 유력 독립운동가 안희제 선생에게 1만원을 지원했다는 것과 구인회 회장의 부친 구재서씨가 1930년대 김구 선생 쪽에 독립운동 자금 5천원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구재서씨의 자금 지원 사실은 근거가 제법 탄탄하지만, 엘지 창업자인 구 회장의 독립자금 지원 사실은 사료가 명확하지 않다.
구 회장의 독립운동 지원 활동은 구 회장 별세 10주기인 1979년 엘지그룹 연암 기념사업회가 펴낸 <연암 구인회>라는 책에 처음 등장한다. 1942년 7월 경남 의령 출신 독립운동가 백산 안희제 선생이 경남 진주에서 포목상 ‘구인상회’를 운영하던 구 회장을 찾아가 “임시정부 독립운동 자금”으로 “1만원 정도”(현재 가치 1억여원)를 요구했고, “구 회장이 은행 계좌에서 1만원을 찾아 건넸다”는 내용이다.
해당 내용은 구 회장 동생 구평회씨의 지인인 극작가 한운사씨가 썼다. 한씨는 구 회장 사후인 1970년대 초 구 회장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의 부탁을 받고 수년 동안 구 회장의 행적을 취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누구의 진술을 바탕으로, 어떤 기록을 근거로 구성된 것인지 사료는 명확하지 않다. 안희제 선생의 손자는 “구인회 회장이 안희제 선생에게 돈을 건넸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안희제 선생 관련 논문을 쓴 오미일 부산대 교수(한국근현대사)도 “구 회장이 안 선생에게 독립자금을 건넸다는 진술이나 자료를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엘지 쪽은 “책이 오래 전에 쓰여, 어떤 근거로 이런 내용이 담겼는지 잘 알지 못한다”며 “다만, 두 분의 관계와 당시 상황에 대한 내용이 매우 구체적이다”라고 말했다.
일제 말기에 이뤄진 독립운동 지원은 목숨을 걸어야 할 위험한 일인 만큼 근거를 남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신뢰도를 보장할 수도 없다. 한 근현대사 연구자는 “엘지의 독립운동 지원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전적으로 긍정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연암 구인회>는 이후 <총수의 결단>(1984년), <한번 믿으면 모두 맡겨라>(1993년)로 재출간되고, 2000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수장을 맡은 한국 경영사학회의 <연암 구인회·상남 구자경 연구>라는 책 등에 관련 내용이 인용되며 ‘독립운동 기업, 엘지’의 바탕이 됐다.
구 회장의 독립운동 지원 사실이 ‘희미한’ 고백인데 반해, 그의 사업 활동은 ‘시류’를 따른 게 확실해 보인다. 이 내용은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진주 지역 유력인사들의 활동을 정리한 ‘일제강점기 인명록’에 두 쪽에 걸쳐 등장한다. 책을 보면, 1932년 진주에 ‘구인회상점’을 낸 구 회장은 1933년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사업자금으로 8천원을 빌리고, 1936년에는 일제가 조직한 경제조직 진주상공회 평의원에 당선된다.
구 회장은 제법 사업이 커진 1940년 회사 이름을 ‘구인상회’로 바꾸고, 1941년 1월과 1942년 1월 ‘매일신보’에 일제를 찬양하는 광고에 회사 이름을 올렸다. ‘흥아유신’과 ‘익찬 동아공영’이라는 일제 찬양문구를 가운데 두고, 수십 개 회사들이 신문의 하단을 단체로 매우는 광고였다. 1944년에는 전쟁으로 물자통제를 담당하던 경남상공경제회의 진주지부원을 지냈다. 이 책을 쓴 김경현 박사는 “적극성이나 주도성, 현저성 등에 비춰볼 때 친일 행위로까지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지만, 목숨 건 항일독립투쟁에 견줄 일은 아니다.
3·1절 10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조선일보>에 실린 LG 독립운동 관련 기사.
3·1절 10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중앙일보>에 실린 LG 독립운동 관련 기사.
3·1절 10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달 28일 <동아일보>에 실린 LG 독립운동 관련 기사.
구 회장의 장남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일제 말인 1945년 4월 지수국민학교 훈도가 됐다. 훈도는 현재 초등 교사로, 당시 황국신민화 교육에 앞장서는 역할을 했다. 오미일 교수는 “훈도를 했다는 것이 곧 친일 행위는 아니다. 다만, 황국신민화교육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공립)국민학교 훈도 경력은 독립유공자 심사 때 흠결 사항으로 고려된다”고 말했다.
엘지와 함께 이른바 ‘5대 독립운동 기업’이라 불리는 동화약품과 유한양행, 지에스(GS)그룹, 교보생명 등은 어떨까? 이들 기업은 엘지보다 뚜렷한 기록을 갖고 있다. 동화약품, 유한양행은 창업자 민강 선생과 유일한 선생이 독립운동 유공자로 등록돼 있고, 교보생명은 창업자 신용호 선생 형인 신용국(호적명 신일선) 선생이 독립운동 유공자다. 지에스그룹 창업자 허만정 선생은 1919년 설립돼 독립운동 지원 회사로 알려진 백산상회에 주주로 참여한 기록이 남아있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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