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개혁연대·경실련·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참여연대 등 개혁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정부여당의 벤처 차등의결권 허용 추진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고, 자칫 경영권 세습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며 한목소리로 반대했다. 지난해 ‘인터넷 전문은행 금산분리 완화’에 이어 개혁진보진영과 정부여당 간에 규제완화를 둘러싸고 2라운드 갈등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경제개혁연대·경실련·민변·참여연대가 21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차등의결권 토론회에서 경제개혁연대 출신인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벤처 차등의결권 허용은 벤처의 성장 사다리가 아니라 재벌 후계자의 경영권 세습 사다리가 될 것”이라며 “출발은 벤처에 국한해도 결국 재벌을 포함한 모든 기업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 의원은 또 “차등의결권이 벤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입증된 바 없다”며 “우리나라 기업 현실에서는 후계자가 아무리 무능해도 황금주 한주만 가지면 자자손손 경영권을 세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많은 수의 의결권을 부여해 경영자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제도다. 전경련·경총 등 경제단체와 보수정당들이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위협에 대한 방어수단으로 도입을 주장해 왔다. 민주당은 종전까지 반대해왔으나 최근 벤처 활성화를 명분으로 허용 쪽으로 급선회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도 최근 새해 업무계획 발표 때 최운열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벤처기업육성법 개정안’처럼 폐해 방지를 위한 안전장치를 둔다면 허용할 수 있다며, 그동안 반대해온 공정위와 다른 입장을 표명했다. 최운열 의원이 마련 중인 안전장치는 비상장 벤처에만 허용, 상장하면 일정기간 뒤 효력 상실, 양도·상속하면 효력 상실 등이다.
경실련 정책위원장인 박상인 서울대 교수도 “차등의결권은 경영자의 사익편취 가능성을 높이고, 벤처 가치를 오히려 떨어뜨려 자본확충에 불리하다”며 “경영세습과 경제력 집중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영국·프랑스 등은 허용하고 독일·스페인 등은 반대하는 등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며 “한국기업에 대한 실질적 적대적 인수합병 시도가 2003년 소버린의 에스케이 주식 매입이 거의 유일하고, 현재도 우선주 발행, ‘5% 룰’(지분 5% 이상 보유자는 5일 이내 금융감독당국에 보고 의무) 등 다양한 수단이 존재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허구”라고 반박했다. 이어 “벤처 차등의결권 도입 시 다른 기업에 대한 출자 금지, 중소기업 범위에서 벗어나는 즉시 보통주 전환, 상속증여시 보통주 전환, 기업공개 이후 차등의결권 금지 및 10년 경과 후 보통주 전환 등 안전장치를 반드시 둬야 하고, 재벌개혁과 징벌적손배제 도입 등으로 공정경제와 혁신경제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변의 서보건 변호사는 “한국은 특유의 재벌 중심 경제구조로 인해 폐해가 끊이지 않아 차등의결권이 득보다 실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벤처에 국한해 도입하는 것도 부정적”이라며 “재벌 3·4세와 친인척이 벤처를 설립하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새로운 편법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개혁연대의 노종화 변호사는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페이스북의 성공은 차등의결권이 아니라 혁신적 기업활동 덕분”이라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등은 차등의결권 없이도 큰 성공을 했다”고 말했다. 또 “2019년 2월말 현재 3만8천개에 달하는 벤처 중에서 매출 1천억원 이상 상위 25개사 중 16곳이 대기업 계열사, 외국인투자기업, 회사역사 40년 이상된 기업”이라며, “차등의결권이 자칫 ‘무늬만 벤처’에 특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송옥렬 교수는 “경영권 보호를 위해 차등의결권 도입을 거론하는 것은 곡학아세”라면서 “벤처에 국한해 허용하더라도 상장을 하면 기존 차등의결권에는 경영권이 영구적으로 승계·상속되지 못하도록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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