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몇년째 이어진 초과세수의 영향으로 정부 재정수지는 3년 연속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돈을 풀기는커녕, 되레 나라 곳간만 불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균형 재정의 덫에 빠져 재정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꼴이라고 비판했다.
정부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2018 회계연도 국가결산’을 심의·의결했다. 국가결산 자료를 보면, 지난해 총세입 385조원, 총세출 364조5천억원으로 세금을 쓰고 남은 돈을 뜻하는 세계잉여금이 이월액을 제외하고도 13조2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사업의 건전성을 보여주는 수치인 관리재정수지는 10조6천억원 적자로 2017년보다 적자 폭이 7조9천억원 줄었다. 관리재정수지는 국민연금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의 수입·지출을 제외한 수치로, 순수한 정부 사업의 건전성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도 -0.6% 수준으로 개선됐다. 이 비율은 2014년 -2.0%, 2015년 -2.4% 등 -2% 안팎으로 유지됐으나, 2016년 -1.4%, 2017년 -1.1%에 이어 3년 연속 개선세다. 통상 재정학자들은 경기 대응, 소득재분배 등 재정의 역할을 하면서 재정건전성과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접점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2%’ 수준의 관리재정수지를 꼽고 있다.
적자 폭이 줄다 보니 국가채무 비율은 사실상 ‘균형 재정’을 달성했다. 지난해 국가채무(D1)는 680조7천억원으로 전년보다 20조5천억원 증가하는 데 그쳤다.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은 2016년 이후 3년째 38.2%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채무의 증가 폭이 경제성장률과 비슷한 수준이란 뜻이다. 적극적인 재정의 역할을 강조한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건전성이 나아지는 역설이 발생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세수추계의 보수성을 먼저 짚었다. 조영철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삼성 등 대기업의 실적이 분기별로 보고되고 지가상승률과 부동산 거래량은 월별로 공개된다”며 “초과세수를 예상하지 못해 의도치 않게 재정건전성이 높아졌다는 재정당국의 항변은 한마디로 난센스”라고 말했다. 정부는 예상치 못한 초과세수를 재정수지 개선의 배경으로 꼽는다.
그 결과 재정이 경기 하강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국가부채가 다소 증가하더라도 경기 둔화의 충격을 완화해야 하는데, 지난 몇년 동안 재정 지출이 매우 확장적이지도 않았고 세금은 세금대로 많이 걷어 민간에 부담을 안겼다”며 “경기 하강이 예상보다 가팔라 보이는 지금, 재정이 과연 제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남는다”고 말했다.
세수 전망이 올해부터 급격히 어두워진다는 점에서 정부가 확장적 재정 정책을 펼칠 기회를 놓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기획재정부는 2019년 세수증가율이 전년 대비 0.4%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기 둔화로 성장률이 낮아질 경우 세수 전망은 더욱 어두워지리란 전망이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결과적으로 좀더 확장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향후 경기침체가 본격화될 경우 2~3년 안에 1%대 성장률에 진입할 가능성도 있는데, 이때 쏟아부을 재정 여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예산의 총지출 증가율이 9.5%에 달했던 만큼 정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향후 대응 수준을 지켜봐야 한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이승철 기획재정부 재정관리관은 “예상하지 못한 초과세수가 연이어 발생해 재정수지가 대폭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며 “관리재정수지를 마이너스로 유지했다는 점에서 확장적인 재정 정책을 폈지만 예상보다는 그 폭이 크지 못했던 것으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결산 결과, 지난해 총세입액 가운데 총세출액, 국채상환액 등을 뺀 세계잉여금 가운데 추경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629억원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회계 세계잉여금 10조7천억원 가운데 국가재정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지방교부세·교육재정교부금 정산, 공적자금 출연, 채무상환 등에 순서대로 사용한 뒤 남은 금액이다. 한국은행 잉여금 등 기타 재원을 더해도 추경 편성을 위해 수조원대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현웅 이경미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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