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휴대폰·기계·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혁신 부재’로 금융위기 이후 국내 제조업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대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산업별 노동생산성 변동요인’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제조업 노동생산성의 연평균 증가율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2011~2015년) 2.2%로, 위기 이전(2001~2007년)의 7.9%에 견줘 5.7%포인트 떨어졌다. 이런 제조업 둔화폭은 같은 기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제조업 평균 둔화폭(-2.0%포인트)에 비해 3배가량 큰 것이다. 서비스업을 포함한 전 산업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위기 이전 4.2%에서 위기 이후 2.1%로 둔화했다.
특히 제조업 노동생산성 증가율 둔화는 수출 주력 산업인 고위기술(반도체·핸드폰·디스플레이 등) 및 중고위기술(기계·자동차·선박 등) 업종에서 현저하게 나타났다. 고위기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위기 이전 14.5%로 우리 경제의 노동생산성 개선을 주도했으나 위기 이후엔 6.8%로 대폭 낮아졌다. 중고위기술의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위기 이전 6.5%에서 위기 이후 0%로 추락했다. 한은은 “수출 주력 산업인 고위 및 중고위기술 업종이 금융위기 이전까지 생산성 개선을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해왔다는 점에서 최근의 노동생산성 둔화는 국제 경쟁력 약화 우려를 낳고, 우리 경제의 장래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동생산성 증가율 하락 원인으로는 자본·노동 물량투입 부족보다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율 둔화가 꼽혔다. 총요소생산성이란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가가치의 증가분으로, 생산과정에서 혁신과 관련 깊다.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위기 이전 4.6%에서 위기 이후 0.1%로 떨어졌다. 혁신기업 출현이 지체되고, 노동과 자본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면 총요소생산성 증가세가 둔화한다.
기업 수준별로 보면 총요소생산성이 상위 5%에 해당하는 선도기업도 증가율 둔화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기술 업종의 선도기업 총요소생산성 증가율은 위기 이전 11.2%에서 위기 이후 7.1%로 4.1%포인트 하락했다. 중고위기술 업종에선 이전 시기보다 8.6%포인트 낮아지며 -0.7%가 됐다. 선도기업을 제외한 나머지 기업들의 총요소생산성 증가율도 고위기술 업종에서 7.2%포인트 내린 2.3%, 중고위 업종에선 7.6%포인트 하락한 -2.5%로 조사됐다.
한은은 “선도기업 생산성 둔화는 수출 증가세 약화, 혁신 부진 때문이고, 후행 기업의 경우 신규기업 진입, 한계기업 퇴출이 원활하지 못해 생산성 증가율이 둔화했다”며 “‘혁신 부재 및 자원 효율적 배분의 부진’이 우리 제조업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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