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은 올해 한국 정부가 내놓은 경제성장률 목표인 2.6~2.7%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단 이에 대해서는 대규모 추경이 뒷받침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입니다.”(3월12일 타르한 페이지오을루 국제통화기금 연례협의 미션단장) 국제통화기금(IMF)이 9일(현지시각)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0월 전망(2.6%)과 동일하게 유지한 배경을 함축하는 발언이다. 연례협의를 위해 한국을 방문한 페이지오을루 단장은 한국 정부 당국과의 정책협의를 마친 뒤 “한국 정부는 단기 성장을 지원하고 리스크를 제한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재정지출을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미션단이 요구했던 추경의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0.5%(9조원 남짓) 수준이었다. 결과적으로 국제통화기금이 세계경제와 주요국 경제의 올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와중에 한국이 ‘선방’한 배경에는 풍부한 재정여력을 전제로 한 확장적 재정정책의 역할이 숨겨져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최배근 건국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대외경제 여건이 하강하는 가운데 수출과 민간소비가 성장률을 지탱하는 역할을 했는데, 올해는 지표상 수출마저 꺾이는 모양새”라며 “한국의 재정여력이 풍부하다는 점을 국제통화기금이 높이 평가한 것으로 보이고 추경 편성 등 정책 노력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 정부의 일반정부 부채(D2) 비율은 40%대 초반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135.7%), 일본(233.2%)은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들 가운데 재정건전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스웨덴(55.5%)이나 오스트레일리아(64.6%)보다도 양호한 수준이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중 통상분쟁 등 대외여건이 생각보다 급격히 악화되는 가운데서도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는 셈이다.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0.1%포인트 상향 조정된 것도 한국 경제 성장 전망에 긍정적인 구실을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국제통화기금은 보고서에서 올해 중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6.3%로 제시했다. 지난해 10월 전망치(6.2%)보다 0.1%포인트 상향 조정한 수치다. 이는 성장률 전망치를 큰 폭으로 낮춘 유럽·미국 등과 비교해 이채롭다. 국제통화기금은 세계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0월 3.7%에서 이번에 3.3%로 0.4%포인트 낮춰잡았다. 미국은 2.5%에서 2.3%로, 유럽은 1.9%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 등이 부진의 늪에 빠진 독일은 1.9%에서 0.8%로 절반 이상 성장률 전망치를 낮췄다. 한때 유럽의 경제 심장으로 불렸던 독일이 이제 유로존 경제 위기의 진앙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박복영 경희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중국 경제의 하강에 대한 경고가 잦았고 이에 중국 당국이 적극적으로 부양책을 펼쳤는데, 이런 노력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경기 둔화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재정 등 정책 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경제권이 그나마 여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도 “한국 경제에 가장 크게 연계된 대외 경제가 미국과 중국인데, 특히 중국의 영향력이 가장 크다”며 “미국의 성장률 전망 하락과 중국의 상향 조정이 서로 상쇄되는 효과를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보고서가 최근의 경기 하강 국면을 모두 반영하지는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최근 내수 소비와 설비투자가 하락세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수출 역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넉달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4월 경제동향’에서 기존의 ‘경기 둔화’ 대신 ‘경기 부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위기의 징후를 좀더 강하게 경고한 바 있다.
하준경 한양대 교수는 “최근에 나오는 경제 지표는 매달 나오는 속보치로 변동성이 크다는 점에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세계경제 전망을 연간 단위로 살피는 국제통화기금 전망치에는 새로운 정보가 반영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전망치 조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석진 교수는 “미션단이 권고했던 9조원 남짓 추경 편성을 전제로 성장률 전망치를 제시했을 것으로 보인다. 추후 재정당국의 정책 집행 정도와 최근 하방 리스크를 업데이트할 경우 전망치를 재조정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짚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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