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마을버스 업체가 버스 뒷유리창에 ‘65살 이상 환영’이라는 문구를 넣은 버스 기사 모집 광고를 붙여놓았다. 박중언 기자
퇴직을 앞둔 대다수 중장년의 바람은 소박하다. 너무 힘든 일이 아니라면 월 150만원 정도만 벌어도 좋겠다는 것이다. 월 150만원은 국민연금을 받으면 다른 수입 없이 노후생활이 가능한 돈이다. 직장을 꾸준히 다닌 50대 중·후반이 앞으로 받을 국민연금 100만원 남짓과 합하면 평균 250만원 안팎인 노후 기본생활비(부부 기준)를 충당할 수 있다. 경제활동에서 고령층으로 분류되는 사람(55~79살)에게 한 2018년 조사에서도 희망 급여액으로 월 150만~200만원을 꼽은 응답자가 네 명에 한 명꼴로 가장 많았다.
월 150만원은 주 40시간 일할 때 받는 최저임금보다 조금 적은 수준이다. 2019년 최저임금은 1시간에 8350원, 40시간을 채워 일하면 주휴수당(주 5일 근무 때 주어지는 하루치 수당)을 포함해 월 174만원을 받을 수 있다. 구인광고에 나온 중장년 일자리 가운데 최저임금보다 많이 주는 곳은 드물다. 고용 형태도 절대다수가 파견직, 계약직, 시급제 아르바이트다. 군 장교 출신으로 파견업체에 고용돼 6년째 건물 경비 업무를 하는 J씨는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월급이 130만원 정도였다”며 최저임금 인상 덕을 많이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장년 일자리 현주소
요즘 중장년은 예전과 달리 눈높이를 많이 낮췄다. 육체노동 거부감도 적고, “내가 어떻게 이런 일을…”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 건강, 관계 등 일이 주는 다른 긍정적 효과를 위해서라도 일하겠다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에겐 최저임금 일자리조차 구하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노후 일자리 창출은 정부 고령화 대책의 핵심 과제다. 건강하게 일하는 고령자가 많을수록 복지와 의료에 들어가는 재정 부담이 줄어든다. 공공기관은 앞다퉈 채용정보를 제공하고 재취업과 창업을 위한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한다.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의 워크넷, 노사발전재단의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100세누리 시니어사회활동포털, 서울시의 50+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100세누리(100senuri.go.kr)가 보기 쉽게 정리해놓은 편이다. 워크넷에 오른 구인광고 가운데 중장년에게 맞는 것만 뽑아놓았다. 물론 우리가 흔히 아는 일자리가 대다수다. 경비, 청소, 운전, 요양보호, 단순노무 등. 그나마 중장년을 찾는 시장형 일자리란 이런 것들이다. 고령 취업자 직종 분포와도 비슷하다. 자영업자나 농림어업에서 일하는 사람을 빼면 서비스업(35.6%)과 도소매·음식숙박업(19.6%)이 대부분이다. 65살이 넘어가면 단순노무와 농림어업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진다.
우리나라 중장년은 대체로 70살이 넘어서까지 일하기를 희망한다. 60살 이전에는 70살까지라는 대답이 많다. 60살이 넘어가면 70살 이후에도 일하고 싶다는 대답이 늘어난다. 일하는 관성이 지속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이유(59%)가 가장 크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하려면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현재 중장년 앞에 놓인 일자리의 급여와 노동조건은 이전보다 훨씬 열악하다. 재취업한 사람은 다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출퇴근해야 한다. 자영업자는 가게에 매달리는 시간이 더 길다. 직장을 다닐 때 같은 휴가도 누리기 어렵다.
경기도 용인의 작은 아파트 단지 관리소장인 S씨는 아파트의 전기·설비를 담당하는 기전기사로 격일 근무를 할 때를 떠올리며 월급여가 250만원 안팎이라 나쁘지는 않았지만 명절 때도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마을버스 업체는 기사 모집 광고에 ‘65살 이상 환영’이라는 문구를 담았다. 기사는 1일 2교대 근무다.
인생의 황금기
대한민국 중장년은 젊은 시절을 긴 노동으로 보냈다. 대부분 고교나 대학을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쉼 없이 달려왔다. 늘 시간 부족에 시달렸다. 이제는 조기퇴직은 물론 정년퇴직 이후에도 재취업과 창업에 안간힘을 쓴다. 어떤 일이든 하면서 살아야겠지만, 언제까지나 돈벌이에 내몰리는 것은 비극이다. 노후빈곤율 1위 국가의 폐지 줍는 노인이 그 상징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조차 노후에도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는 사실이다.
그럼 도대체 ‘왜 사는가’ 하는 근본적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정신적, 신체적 나이가 숫자상 나이보다 훨씬 젊다. 하지만 70살 넘어서까지 활동적인 삶을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다. 60살 정년을 기준으로 보면, 이후 10년이 인생 ‘황금기’인 것이다. 노동과 가족부양 의무에서 해방된 동시에 몸과 마음의 활기를 잃지 않은 시기다. 그런데 이런 소중한 시기를 통째로 얼마 되지 않는 수입과 맞바꾸는 것은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주 40시간 근무로 최저임금 수준을 번다고 할 때, 연간 수입은 2천만원 정도가 된다. 단순히 계산하면, 평범한 중장년에게 10년의 시장가격은 2억원인 셈이다. 그 돈을 더 벌려 하거나 자식에게 주려 하지 않으면 10년을 자신의 바람대로 살 수 있다. 물론 뭘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사람이라면 돈벌이라도 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요즘 정년이 62살인 교사는 물론 65살인 교수도 돈 대신 시간을 택하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서울 K대 S교수는 지난해 60살이 된 교수 2명이 스스로 그만뒀다며 전례 없던 일이라고 전했다. 생활에 어려움이 없기에 가능한 결정이겠지만 그만큼 남은 시간이 소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장년을 위해선 돈과 시간 사이에서 중대 결단을 내리지 않더라도 할 만한 적정 일자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적은 노동시간과 수입의 균형이 그것이다. 이 측면에서 60살 이상 취업자가 40만 명 가까이 늘어난 것(2019년 2월 통계청 고용동향)은 너무 평가절하할 일이 아니다. 사회적 필요에 맞는 더 나은 일자리로 바뀌기를 기대할 따름이다. 일만 하다 죽는 일벌이 아니라 맘껏 날갯짓하는 나비의 삶을 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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