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역사에서 독일은 ‘세계 최초’ 타이틀 2개를 갖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세계 최초 가솔린차’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를 세운 카를 벤츠가 1886년 만든 ‘페이턴트 모터바겐’이라는 삼륜차가 그것입니다. 1기통 엔진에 최고 속도는 시속 16㎞였습니다. 또 다른 타이틀은 ‘세계 최초 디젤차’입니다. 독일 공학박사 루돌프 디젤이 개발한 디젤을, 벤츠가 자동차용으로 개발해 1936년 디젤차를 선보였습니다. 4기통 엔진에 최고 속도는 시속 95㎞였습니다.
가솔린과 디젤은 독일 기술력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습니다. 당시 자동차란 미지의 분야에 모험을 시도한 벤츠는 명품 자동차 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런 선도적인 기업 영향으로 독일에는 ‘히든챔피언’(Hidden Champion)이라는 중소기업이 많습니다. 이들 기업은 증권사 애널리스트조차 잘 모르지만 기술력으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기업을 뜻하는 ‘강소기업’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런 독일에서 잘나가는 벤처기업을 찾기 힘든데요. 최근 <슈피겔>은 독일에서 벤처기업 창업이 활발하지만 창업자들이 성취한 결과에 너무 빨리 만족해 어느 정도 성장하면 기업을 매각해 돈을 챙겨버린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가 젊은 시절 회사를 팔라는 제안을 거절한 일과 비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처럼 세계 최고 벤처기업을 찾기 힘들어진 것이죠.
물론 벤처는 혁신적인 제품과 야심, 용기만으로 세계시장을 정복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중요한 속도, 시장을 선점하고 점유하는 능력, 이를 지원하는 벤처캐피털이 필요한데, 독일에선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는 것도 이유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해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생겨난 한국의 벤처는 대기업 중심 경제라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눈에 띈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네이버, 다음, 엔씨소프트, 넥슨, 카카오는 한국을 넘어 일본, 중국, 미국까지 진출하며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뒤입니다. 이런 1세대 벤처를 뛰어넘는 2, 3세대 벤처가 속속 나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벤처기업이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력으로 도약할 수 있는 환경과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벤처의 원래 뜻은 ‘모험’입니다. 카를 벤츠가 1886년 세계 최초로 가솔린차를 만들 때, 벤츠는 벤처였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 벤처기업이 나오지 않는다는 기사를 보며 생각해봅니다. ‘벤츠’로 대변되는 대기업과 ‘벤처’로 이해되는 중소기업의 간격이 줄어들수록 기업 하기 좋은 나라일 것입니다. 그래야 일자리도 생기고, 청년에게도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정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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