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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착용 편한 상체식 벨트? “빨리 내려주십쇼” 읍소가 나왔다

등록 2019-05-23 18:21수정 2019-05-24 09:16

건설현장 안전교육 체험기

고공작업 VR체험
용접불꽃 튀고 H빔 휙휙
돌출 장애물 넘다 삐끗 추락

안전벨트 맸지만
복부 조이는 상체식 벨트
“빨리 내려주세요” 읍소도
개구부 추락 체험 직전 자세를 잡은 김태규 기자.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개구부 추락 체험 직전 자세를 잡은 김태규 기자.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고공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이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다. 떨어져서 부서지고 으깨진다…사흘에 두 명꼴로 매일 떨어진다.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소설가 김훈씨가 최근 <한겨레>에 보내온 ‘아, 목숨이 낙엽처럼’이라는 글의 일부다. 그는 한 해에 수백명이 건설현장에서 추락 사고로 숨진다는 뉴스를 접하고 글을 썼다. 실제로 추락 사고는 건설현장 산재 사망의 다수를 차지한다. 지난해 산재로 숨진 971명(산재 확정 시점 기준) 중 절반(485명)이 건설현장에서 발생했고 그중 290명(59.7%)이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수욱! 푹! 순식간에 자유 낙하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건설현장 산업재해를 줄이기 위한 건설사의 안전교육도 강화되고 있다. 지난 21일 찾은 경기 용인시 대림산업 교육연구원의 안전체험학교. 협력업체 현장소장 15명을 대상으로 하루 일정의 안전교육이 한창이었다. 이들과 함께 처음으로 체험한 프로그램은 고공 건설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개구부(덮개가 없는 구멍) 추락’. 다른 교육생 3명과 함께 4m 높이의 체험장으로 올라갔다. 강사는 체험 전 재밌는 게임을 하겠다며 2명씩 짝을 지어 밧줄에 연결된 무거운 양동이를 어느 쪽이 먼저 끌어올리는지 겨루자고 했다. 힘을 합쳐 막 밧줄을 잡아당기려는 순간, ‘안전 난간대’가 철컹거리며 앞으로 쏠렸다. 난간에 기대 밧줄을 잽싸게 잡아당기려던 상황이라 깜짝 놀랐다. 난간에 섣불리 기댔다가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을 체험하게 한 것이었다. 강사는 “난간대는 현장에서 작업을 위해 철거했다가 다시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안전하게 원상복구 하지 않는 경우가 80%나 된다”고 말했다. 고공 현장에선 난간대에 함부로 기대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추락 체험 직후 스티로폼 더미에 파묻힌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추락 체험 직후 스티로폼 더미에 파묻힌 모습.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앞 조 2명이 먼저 개구부 발판에 서서 추락을 기다렸다. 2명이 준비 자세를 갖추자 강사는 다른 교육생들을 향해 “점심 메뉴 괜찮았어요?”라고 물었다. 그 순간 체험자 2명의 발판이 푹 꺼져버렸다. 주의를 분산시켜 불시에 찾아오는 추락 사고를 경험하게 한 것이다. 나도 그랬다. 강사가 시키는 대로 깍지 낀 손을 배꼽에 대고 팔을 몸통에 붙인 뒤 무릎을 약간 굽힌 채 추락을 기다렸다. 수욱! 푹! 찰나의 순간, 자유 낙하가 이뤄졌고 내 몸은 스티로폼 더미에 파묻혔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강사가 무슨 기교로 내심의 추락 타이밍을 빼앗았는지 알 수 없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허우적거리며 스티로폼 부스를 빠져나왔다.

이어 고공 작업 현장을 가상현실(VR)로 체험했다. 양손에 컨트롤러를 들고 브이아르 헬멧을 썼다. 눈앞에 주황색 철골 구조물이 선명한 고공 작업장이 펼쳐졌다. 양손의 컨트롤러 중 왼손은 안전대 고리, 오른손은 너트를 조이는 렌치였다. 철골 구조물 위에 외줄 타듯 올라갔고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대에 안전대 고리를 건 뒤 첫발을 뗐다. 모든 게 허구의 이미지라는 점을 알지만 실감 나는 고공 현장에서 긴장감은 더해졌다. 몇 발짝을 떼자 용접 작업 중이던 위층에서 불꽃이 튀며 이런저런 낙하물들이 안전모를 때렸다. 조금 더 나아가 철골 구조물 바닥의 너트를 렌치로 조였다. 작업을 마치고 다시 발을 떼자 오른쪽 3시 방향에서 타워크레인에 매달려있는 에이치(H)빔이 날아다녔다. 위험한 상황을 넘기고 한 층을 더 올라갔다. 이번엔 철골 구조물 중간에 툭 튀어나온 장애물이 나타났다. 이걸 타고 넘어가려는 순간, 중심을 잃고 기우뚱했다. 안전대 고리를 안전대에 걸지 않아 발생한 추락 사고였다. 헬멧을 벗은 뒤에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VR 고공 작업 중 오른쪽에서 H빔이 날아오는 상황이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VR 고공 작업 중 오른쪽에서 H빔이 날아오는 상황이다.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안전벨트에 매달려 대롱대롱…“빨리 내려주세요”

건설현장에서 추락 사고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벨트 착용은 필수다. 이날 교육에서도 안전벨트 체험은 중요 과정이었다. 현재 건설현장에서는 그네식과 상체식 벨트 등이 두루 쓰인다. 이날 착용한 그네식 벨트엔 가슴과 사타구니를 감싸는 버클이 있는 반면 상체식엔 가슴과 허리에 버클이 있었다. 체험을 시작하기 전, 강사가 교육생들에게 그네식 벨트가 어떠냐고 묻자 “화장실 가서 일을 볼 때 일일이 풀어야 하니 불편하다”, “상체식은 주로 관리자들이, 그네식은 현장 근로자가 착용한다는 느낌이 있다”고 답했다. 사타구니 버클까지 착용해야 하는 그네식이 불편해 관리자들은 착용을 꺼린다는 얘기였다. 그네식에 대한 ‘세평’을 마친 뒤 체험을 시작했다. 기중기에 연결돼있는 밧줄을 교육생들의 등 부위에 있는 안전벨트 고리와 연결했다. 기중기가 밧줄을 끌어올리자 서로 손을 맞잡은 6명 교육생들의 몸이 1m 정도 공중에 떴다. 상체가 약간 앞으로 구부러지긴 했지만 비교적 직립에 가까운 형태로 매달릴 수 있었다. 사타구니 버클을 체형에 맞게 조이지 않았던 탓에 벨트가 오른쪽 허벅지 피부를 쓸면서 통증을 유발했지만 매달림 자체가 힘들진 않았다. 곧이어 ‘쿵’하고 밧줄이 흔들렸다. 추락 체험이었다. 겨우 ‘10㎝ 낙하’에 불과했지만 추락에 따른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네식 벨트를 매고 떨어져도 안전대에 지탱하면 평균 30분은 매달려있을 수 있다고 했다. 구조가 가능한 시간이다.

상체식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공중에 매달린 체험을 하고 있다. 허리벨트가 복부를 압박한 탓에 호흡이 곤란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상체식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공중에 매달린 체험을 하고 있다. 허리벨트가 복부를 압박한 탓에 호흡이 곤란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곧바로 상체식 벨트를 착용하고 똑같은 체험이 이어졌다. 기중기가 밧줄을 들어 올리자 이번엔 마치 슈퍼맨처럼 몸이 지면과 수평 상태가 됐다. 허리 벨트가 복부를 조여서 숨쉬기가 곤란했다. 누군가 “빨리 내려주십쇼”라며 애원했다. 10㎝ 낙하도 생략됐다. 상체식 벨트를 찬 채 추락 사고를 당하면 내장이 파열될 수 있고 호흡 곤란에 따른 쇼크사 위험이 크다고 했다. 체험을 마치자 한 교육생이 “그네식 벨트 차야겠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육생은 “이렇게 위험한 상체식 벨트를 왜 판매하게 하느냐“고 물었다. 대림산업 안전보건팀의 홍성호 부장은 “19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한 상체식 벨트가 처음에는 가랑이 버클을 탈착식으로 시판했는데 나중에 편의성을 높이려고 가랑이 부분을 빼고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졌다”며 “상체식은 허리에 벨트가 있어 수첩이나 무전기, 공구 등을 휴대하기 편하다. 요즘은 고소 작업에는 그네식 벨트를 쓰고, 실내나 저층부 작업 때 상체식 벨트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도 건설사도 ‘추락 사고 줄이기’ 팔 걷어

대림산업은 올해 1월 안전체험학교를 개교했다. 지난해 선포한 안전경영 방침의 후속 작업으로 임원·신입사원 안전교육을 마쳤고 안전 관리자, 현장소장들에 대한 교육이 진행 중이다. 2016년과 2017년 각각 7명, 5명이었던 대림산업의 산재 사망 사고는 지난해 2명으로 줄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정부도 추락 사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난달 11일 국토교통부와 고용노동부는 △소규모 민간 공사에도 안전성이 검증된 일체형 작업 발판(시스템 비계)의 사용 유도 △건설현장 안전벨트 미착용 경고하는 스마트 안전장비 사용 의무화 등을 담은 ‘건설현장 추락 사고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국토부도 건설현장 산재 사고 저감을 거듭 약속하고 있다. 김현미 장관은 23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를 ‘건설현장 추락 사고 줄이기 원년’으로 선포하고 사고 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지난주에는 건설안전 슬로건 선포식도 가졌다”며 “일체형 작업발판 의무사용 확대 등 안전한 건설 환경 조성을 통해 건설현장 사고를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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