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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식지 않는 경제 성장률 논란

등록 2019-06-03 08:59수정 2019-06-03 20:40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한은 하반기 회복 강조하지만
수출·제조업 구조적 둔화 추세
2019년 4월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19년 경제 전망(잠정)' 기자설명회에서 정규일 한은 부총재보가 한은 전망치의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4월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2019년 경제 전망(잠정)' 기자설명회에서 정규일 한은 부총재보가 한은 전망치의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경제를 분석·탐구하는 경제학은 주로 재생산(단순·확대재생산) 문제를 다룬다. 단순재생산은 지금 먹고사는 수준을 예전과 같은 정도로 반복하는 것이고, 확대재생산은 생산이 늘어나는 성장 경제를 의미한다. 경제학원론 가르침에 따르면, 생산은 ‘국민소득 3면(생산·지출·분배) 등가의 법칙’에 따라 소득·고용·소비로 대표되는 국민 생활수준을 의미한다.

2019년 1분기 한국 경제가 역성장하면서 재생산 문제가 부상하고 있다. 재생산에서 문제가 일어나면 저소득·취약계층이 가장 먼저 그리고 크게 위험과 고통을 겪는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이런 의미에서 ‘어떤 성장’을 추구할지와 별개로, 성장은 분배 못지않게 중요한 지표임이 틀림없다.

감소 또 감소

4월25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치)’을 보면, 1~3월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직전 분기(2018년 4분기)보다 0.3% 감소했다. 분기 기준으로 2008년 4분기(-3.3%) 이후 가장 크게 떨어졌다. 또 2017년 4분기(-0.2%) 이후 5분기 만의 마이너스성장이다. 5월9일 한국은행은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5월)’에서 “(1~4월) 성장세 주춤”이라고 표현했다. 보고서는 “국내 경제는 소비 증가율이 낮아진 가운데 설비·건설 투자 조정이 이어지고 수출 부진이 지속되면서 성장세가 주춤한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제조업·수출 급감이 이번 ‘성장률 쇼크’ 진원지다. 2018년 4분기에 견줘 수출(-2.6%), 설비투자(-10.8%), 건설투자(-0.1%)가 크게 뒷걸음쳤다. 설비투자 감소폭은 1998년 1분기(-24.8%) 이후 가장 컸다. 민간소비는 소폭(0.1%) 늘었다. 1분기 전체 성장에 기여한 정도를 생산활동별로 보면, 제조업 -0.7%포인트, 서비스업 0.5%포인트다.

전년 동기(1분기) 대비 1.8% 성장에 그친 점도 위기감을 더한다. 2009년 3분기(0.9%) 이후 38분기 만의 최저치다. 2017년부터 2년 동안의 전년 동기 대비 분기성장률은 2.0~3.8%(4차례 2.8%)였다. 특히 제조업 성장기여도가 대폭 감소했다. 2017년(0.7~1.7%포인트) 이후 가장 낮은 0.4%포인트에 그쳤다. 성장을 이끄는 제조업 활력이 크게 떨어진 셈이다.

그러나 한은 쪽은 이런 마이너스 분기 성장률이 “놀랄 만한 쇼크는 아니다”라고 했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브리핑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등의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경제발전 단계가 성숙해 잠재성장률이 2%대에 이르면 직전 분기 대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일이 가끔씩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우리가 과거 5%대 성장을 할 때는 이런 현상이 거의 없었으나, 잠재성장률이 2%대(2.7~2.8% 추정)로 내려앉으면서 그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경기침체(리세션)’를 2분기 또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성장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국은행은 4월에 내놓은 2019년 ‘경제 전망(수정치)’에서 “국내 경제는 향후 잠재성장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올해와 내년 성장률을 각각 2.5%, 2.6%로 전망했다. 박 국장은 이날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2분기에 6.4조원 규모 추가경정예산 집행 등에 힘입어 전 분기 대비 1.5% 정도 성장하면 한은의 상반기 성장 전망치(2.3%) 달성이 가능하고, 3·4분기에 0.8~0.9% 정도 성장을 유지하면 연간 전망치인 2.5%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1분기 쇼크에도 올해 성장 경로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6조4천억원 추경이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는 0.1%포인트 수준으로 추산된다.

5월이 지나가면서 한은이 기대하는 대로 2분기 1.5% 성장을 이룰 수 있을지는 더욱 의문시된다. 추경안은 아직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수출(통관 기준)은 전년 동기에 비해 2018년 12월 -1.7%→2019년 1월 -6.2%→2월 -11.4%→3월 -8.2%→4월 -2.0%→5월(1~10일) -6.4%로 5개월 넘게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부산항 신선대 부두와 감만 부두에 쌓여 있는 수출입 컨테이너들. 수출과 제조업 부진이 2019년 1분기 마이너스성장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연합뉴스
부산항 신선대 부두와 감만 부두에 쌓여 있는 수출입 컨테이너들. 수출과 제조업 부진이 2019년 1분기 마이너스성장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연합뉴스
엇갈린 전망

2019년 하반기 성장률 전망치는 정부·한은과 민간 경제연구기관 사이에 확연하게 갈리고 있다. 최근 제시된 수치는 한은 2.7%, LG경제연구원 2.4%, 현대경제연구원 2.5%다. 한은은 “2분기부터 정부 재정지출 확대가 예상되고 수출 부진도 완화돼 잠재성장률 수준의 완만한 성장세를 회복할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LG경제연구원은 “2017년 6월을 (경기변동 순환 사이클의) 경기 정점으로 볼 때 경기 하향 국면이 2년 가까이 지속됐지만 대내외 수요가 전반적으로 위축되면서 올 하반기에도 어려운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 경제와 세계경제 모두 2017년 여름 무렵 정점을 찍고 현재 수축기에 들어섰다는 것은 통계청과 IMF가 거의 확정적으로 언급하는 ‘팩트’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한국 경기의 하강 국면은 평균 1년6개월가량 지속됐다. 한은과 정부가 순환주기에 비춰 2019년 상반기에 경기가 바닥을 찍을 것으로 보는 몇 가지 근거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민간 경제연구소는 현재 경기 흐름을 나타내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와, 향후 경기변동(전환점)을 평균 5~9개월 앞서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에 주목한다. LG경제연구원은 “동행지수 순환변동치가 작년 4월 이후 11개월 연속 떨어져 1997년 구제금융 사태 때의 12개월 연속 하락 기록에 근접하고 있다”며 “이번 경기 하향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 3월 말 “최근 경기동행·선행지수가 통계를 작성한 1970년대 초 이후 가장 긴 9개월 연속 동반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라며 “경기 방향성을 보여주는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2017년 8월 이후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은 경기가 저점을 찍었는지와 같은 전환점 판단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확장 국면으로 바뀐다고 해도 우리 경제 활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 수요 둔화가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를 통해 파급되는 경로가 중요하다. 세계경제 개선이 미약하기 때문에 반도체 수출도 물량·금액 양쪽에서 직접적 영향을 받아 업황이 뚜렷이 개선될 가능성은 낮다. 반도체 동향에 따라 성장의 한 축인 내수(특히 투자)도 위축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의 높은 무역의존도를 고려할 때, 향후 세계 교역 여건 변화가 관건이다. 4월 IMF는 2019년 주요 선진국 투자 전망치를 4.1%에서 2.5%로 낮췄다. 세계 교역 신장률도 지난해 3.8%에서 올해 3.4%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 지표에서도 올해 들어 세계 교역량 증가세(1~2월 0.1%)는 2018년 1분기(5.0%)보다 크게 둔화됐다. 최근 3년(2016~2018년)간 평균치(3.5%)보다도 낮다. 세계 교역 증가세는 2002~2007년 평균 7.7%에서 2012~2018년 평균 3.5%로 줄었다.

한은은 △신흥시장국가의 임금 상승과 기술력 향상 등으로 글로벌 분업 유인이 과거보다 축소 △우수한 연구 인력과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선진국의 글로벌 가치사슬 참여도 하락 △인공지능(AI)·로봇기술 발전 등으로 생산공정이 효율화·통합화하면서 선진국의 아웃소싱 수요 감소를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구조적 둔화

정부와 한은은 반도체 수출과 세계경제가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회복될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세계시장의 수입 수요에 대한 한국의 수출 탄력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전세계 교역 물동량이 회복된다고 해도 수출이 성장을 견인하는 힘이 계속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강두용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4~2017년 통계 작성 이후 최초로 실질(물량 기준) 수출증가율이 4년 연속 경제성장률을 밑돌았다”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교역이 국제 생산 분업 체제 변화와 중국 경제 구조 변동 등 구조적 요인으로 둔화해 수출 부진이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에는 전세계 수입 수요가 1% 증가할 때 한국 수출이 장기적으로 1.8% 안팎 늘어났으나 이후에는 증가폭이 1.4% 수준으로 25% 정도 줄었다. 최근 수출 감소는 단순한 경기적 요인을 넘어 구조적 둔화 양상을 보인다는 얘기다. 한은이 머잖아 제조업과 수출의 이런 구조적 변동, 나아가 인구구조 변동 등까지 반영해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하향 조정할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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