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월 3만원에 커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 회원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커피 마피아’ 이다바시점. 커피 마피아 홈페이지
‘구독경제.’ 요즘 자주 눈에 띄는 단어다. 가정에서 배달받는 신문과 우유처럼 정기 요금을 내고 물품이나 서비스를 사는 방식이다. 자동차와 같이 비싼 내구재는 물론 정수기, 침대도 월 회비를 내고 빌려 쓰는 게 이미 일상화됐다. 헬스장이나 고급 클럽 등 서비스 분야에서도 회원제는 일반적이다. 최근에는 음식점·카페 등 외식 시장에서도 회원 가입을 통한 구독 형태 소비가 늘고 있다고 일본 경제주간 <도요게이자이> 최근호가 전했다.
도쿄에선 한 달에 3천엔(약 3만원)을 내면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카페가 눈길을 끈다. ‘커피 마피아’란 이름이 붙은 이 가게는 니시신주쿠, 이다바시, 긴자에 점포를 냈다. 미리 인터넷으로 회원 가입을 하고 월 회비 3천엔(세금 포함)을 낸 사람이 주 고객이다. 회원은 한 잔에 300엔가량 하는 핸드 드립 커피를 얼마든지 마셔도 된다. 월 6500엔을 내는 회원에게는 모든 종류의 음료를 원하는 대로 마실 권리가 주어진다.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주변 단골손님을 유치하기 위해 발행하는 쿠폰과 달리 정액제 서비스다.
커피 무제한
커피 마피아가 등장한 때는 2년6개월 전이다. 커피 마피아를 운영하는 음식점마케팅 지원사인 ‘파비’는 카페 이용 회원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드립 커피에 빵, 샐러드, 삶은 달걀을 곁들인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이즈미 카페를 나고야시에 열었다. 월 회비는 소비세 8%를 포함해 4320엔이다.
4월 중순 평일 오전 10시께 커피 마피아 이다바시점 영업 상황을 취재한 <도요게이자이>에 따르면, 30분 사이에 20명이 이곳을 다녀갔다. 회원 고객은 직원에게 스마트폰 화면을 보여주며 회원 확인만 하고 커피를 주문한다. 이들의 월평균 카페 방문 횟수는 22차례나 되는 것으로 집계됐다. 커피 마피아는 평일만 영업한다. 주 5일 근무를 하는 직장인을 기준으로 할 때, 회원은 적어도 하루에 한 번 이곳을 들르는 셈이다.
애초 이 회사는 회원제를 도입할 때 평균 이용 횟수를 월 10회 정도로 예상했다. 그런데 회원들이 커피를 훨씬 많이 마시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수익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3천엔에 22잔을 마시므로, 단순 계산으로 1잔 값은 136엔이 된다. 일반 카페에선 커피 최저가가 200엔 정도다. 게다가 커피 마피아는 가격이 비싼 편인 싱글오리진 원두를 쓴다고 한다. 월세와 인건비 등을 포함해 점포 운영비가 적잖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회사가 구독 방식을 지속하는 이유는 충성고객 증가에 있다. 가성비가 높아 일단 회원이 된 사람은 거의 100% 회원제를 계속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탈 고객이 별로 없어 신규 회원이 늘어날수록 매출과 순익이 늘어나는 구조다.
구독 방식 음식점으로는 양이 많기로 소문난 ‘야로라멘’이 대표적이다. 16개 점포를 운영하는 야로라멘은 2017년 11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한 구독 방식을 도입했다. 세금을 포함해 월 회비 9300엔을 내는 회원제 고객은 하루에 가격이 780~880엔인 세 종류의 라면 가운데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 이 체인은 중국 대도시에 점포 4곳을 내기도 했다.
이 음식점 이용자 대부분은 근처 사무실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나 학생이다. 고객 월평균 이용 횟수는 17~18회로 나타났다. 매일 비슷한 종류의 라면을 먹기는 쉽지 않아 회원제를 계속 이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편이라고 업체 관계자는 털어놓았다. 야로라멘은 판매 수익보다 광고 효과를 더 크게 누리고 있다.
이 음식점에서 날마다 라면 먹는 모습을 페이스북 또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회원이 적지 않다. 구독 방식이 화제가 돼 방송에도 자주 나온다.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인지도를 높이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이 밖에 라멘 나기와 선술집 체인 안도모와, 롯폰기 와인 바 프로비존 등이 회원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객 데이터가 핵심
고객 방문 횟수가 많을수록 점포의 외형적 이익은 줄어든다. 커피 마피아에는 하루 세 차례 들르는 고객도 있다고 한다. ‘알뜰한’ 고객은 마신 커피값이 낸 회비를 훨씬 웃돈다. 가게 주인으로선 인건비와 재료비 등 본전도 건지기 힘들다. 그러나 고객 방문이 잦으면 고객 데이터 질이 높아진다. 구독경제의 가장 큰 이점은 양질의 고객 데이터 축적이다.
고객이 스마트폰으로 등록하기 때문에 회원의 나이와 성별, 방문 시각 등 이용 정보가 축적된다. 이를 통해 고객 구매 행동을 상당히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축적한 데이터를 분석해 음료와 음식 메뉴 개발 등에 활용한다. 잘 팔리는 상품과 고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시각도 예측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료가 떨어져 팔지 못하거나, 남는 재료를 폐기하는 바람에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는 일’은 크게 줄어든다.
매일같이 들르는 단골손님이 많아 직원과 고객의 의사소통도 활발하다. 직원이 고객 얼굴을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이야기하다보면 추가 구매 유도가 훨씬 수월하다. 새 제품을 권유하거나 점포를 방문한 김에 다른 제품도 사도록 해 부가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판매가격이 가장 싼 편인 일반 커피가 ‘미끼 상품’ 구실을 해, 비싼 음료와 케이크 매출을 올려준다. 기존 회원이 커피값을 아끼려 회원이 아닌 동료를 해당 가게로 데리고 오는 ‘덤’도 기대할 수 있다. 고객 데이터와 의사소통을 활용하면 점포의 효율적 운영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 커피 마피아 관계자는 프랜차이즈 문의가 많다며, 고객이 한 달에 22차례나 방문하는 음식점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박중언 부편집장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