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중소·중견기업을 물려받을 때 상속세 공제 혜택을 받는 가업상속공제의 업종·자산·고용 유지 의무 기간이 7년으로 줄고 요건도 완화된다.
정부는 11일 더불어민주당과 당정 협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방안’을 확정 발표했다. 정부는 2019년 세법개정안에 반영해 9월 초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당정 협의에 앞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인 이번 개편이 가업의 안정적 유지와 경쟁력 제고를 통해 중소·중견기업의 활력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활용된 사례는 해마다 60~90여건에 불과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과의 ‘가업상속 지원세제 개편방안’ 당정 협의에 참석해 이인영 원내대표, 조정식 정책위의장과 대화하고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은 중소기업법이 정하는 중소기업과 매출액 3천억원 미만인 중견기업을 물려받는 경우 피상속인이 경영한 기간에 따라 상속세 과세가액을 최대 500억원 한도로 공제해 주고 있다. 다만 상속세를 공제받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주된 업종을 그대로 유지해야 하고, 20% 이상 자산을 처분할 수 없으며, 고용 인원도 유지해야 한다. 이를 어길 때는 공제받은 상속세와 그에 대한 이자까지 돌려내야 한다.
개편안은 이런 업종, 자산, 고용 유지 등 사후관리를 받는 기간을 당초 10년에서 7년으로 줄여주는 내용이 핵심이다.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 독일(7년)과 일본(5년)보다 한국의 관리기간이 너무 길다는 지적을 수용한 것이다.
산업 개편 속도가 빨라진 점을 고려해 주된 업종 변경의 범위도 넓혀주기로 했다. 한국표준산업분류는 대·중·소분류로 산업을 구분 짓고 있는데, 중분류 범위 안에서 업종 변경을 하는 것은 동일한 업종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분 및 전분제품 제조업’(소분류)에 해당하는 밀가루 업체를 물려받은 경우, 기존에는 같은 소분류 안에 있는 곡물 분말·반죽 등으로만 업종을 변경이 제한됐는데, 내년부터는 같은 ‘식료품 제조업’(중분류)에 포함된 면류·빵류·과자류 제조업으로 변경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당정은 전문가 등 외부 위원회를 구성해 중분류 범위 밖의 업종 변경도 예외적으로 승인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일본 후지필름의 경우 디지털 카메라 출현으로 필름 시장이 무너진 뒤, 필름 제조에 사용하던 콜라겐 가공 기술을 활용해 화장품·의약품 제조업체로 변신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처럼 산업 생태계의 변화에 따라 업종 변경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중분류 범위를 벗어나도 공제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취지다. 민주당 가업상속 과세 개선 티에프(TF) 최운열 단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술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데 전통적인 산업분류표에 얽매이다 보면 기업이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런 측면에서 추가 완화 조처를 설득했고 정부도 이를 수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개편안에는 가업상속공제 대상 기업의 매출액 기준을 5천억~7천억원까지 확대하자는 당초 여당 쪽 요구는 반영되지 않았다. 상속세 감면 확대가 ‘부자 감세’ 등 조세 형평성에 대한 논란으로 번질 것을 우려해서다. 이에 대해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대상 기업 매출액 기준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된 법 개정안에도 여러 의견이 있는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심도 있게 논의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개편안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기업 승계를 추진하려는 기업들이 규제 완화 효과 자체를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최대주주 할증 평가 폐지, 가업상속공제의 적용대상 및 사전·사후 관리 요건 대폭 완화 등을 이번 개편 방안 추진에 실질적으로 반영해주길 요청한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사후 관리 기간 및 업종 유지 의무 완화는 중소기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요구하던 숙원 중 하나로서 환영한다”면서도 “고용과 자산유지 의무, 피상속인 최대주주 지분요건의 경우 중소기업계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노현웅 서영지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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