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돈이라구요? 초정밀 인쇄 예술품입니다”

등록 2019-06-19 19:08수정 2019-06-22 11:47

5만원권 발행 10년 맞는 조폐창
이중담장·감시카메라 철통보안 속
화폐·여권·훈장 등 110여 상품 제조
태국 등 외국 동전 만들어 수출도

평판·홀로그램 등 다단계 공정
은선 등 22개 위조방지장치 심어
5만원권 완제품 제작까지 40일
18일 경산 조폐창의 은행권 인쇄공장에서 한국조폐공사 직원이 5만원권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조폐공사 제공
18일 경산 조폐창의 은행권 인쇄공장에서 한국조폐공사 직원이 5만원권 제품을 검사하고 있다. 조폐공사 제공
“여기 공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5만원권을 돈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만드는 하나의 제품이라고 생각해요. 또 그래야 하고요. 단 한장이라도 계수 집계가 어긋나면 그날 전부 퇴근 못해요.”

5만원권이 새로 발행(2009년 6월23일)된지 10년가량 된 지난 18일 경북 경산에 있는 한국조폐공사 조폐창. 1975년 경산에 들어선 ‘가급 국가중요보안시설’ 조폐창의 지폐 은행권(1천원·5천원·1만원·5만원) 인쇄공장은 독일에서 들여온 수십년된 인쇄기계 30여대가 인쇄공장 특유의 소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천장마다 직사각형 흡음기 수천개가 즐비하게 매달려 소음을 빨아들였다. 생산공정에 단계별로 설치돼 있는 평판기계·홀로그램부착기계·요판기계·활판기계마다 ‘우리의 고객은 국민입니다’라는 모토가 선명하고, 기계마다 5만원권 제작 장수를 카운트하는 계수기가 쉴새없이 작동중이었다. “저쪽 작업대에서 넘어온 장수와 단 1이라도 어긋나면 어디서 오류가 발생했는지 추적해 완벽하게 숫자가 다시 맞아 떨어지기 전까지 아무도 퇴근 못해요.” 한 직원의 말이다. 칼라잉크 냄새가 퍼져가는 작업대마다 벽면 위쪽 곳곳에는 카메라 수십대가 돌아가고 있었다. 은행권 용지는 펄프가 아니라 찢어지지 않고 질긴 섬유로, 주로 우즈베키스탄에서 들여오는 면화가 원재료다. 용지와 잉크가 공정에 투입된 뒤 완제품으로 포장될 때까지 약 40일이 소요된다. 채희수 실장(화폐본부)은 “은행권 도안은 일반 프린트처럼 점을 연결하는 방식이 아니라 미세한 선을 연결한다”며 “여기서 생산된 5만원권은 그저 제품에 불과할뿐 바깥으로 출고돼서 발주처인 한국은행이 기록·인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그때부터 비로소 가치를 갖는 화폐가 된다”고 말했다. 이날 조폐창에 보관중인 완제품은 액면으로 약 2천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5만원권은 장마다 일종의 고유 일련번호인 ‘기번호’가 찍혀 있다. 영어 3개, 숫자 7개로 구성되는 기번호는 몇년도에 어느 기계에서 생산됐는지를 보여주는 식별정보다. 한묶음 1만장짜리 뭉치(5억원어치) 수백개가 10톤 무장트럭에 실려 한은에 납품되고, 한은이 기번호를 기록으로 남기면 진짜 돈으로 유통된다. 화폐 액면가격에서 제조 비용을 뺀 화폐주조차익(시뇨리지)이 그때서야 발생하는 셈이다.

마지막 공정인 불량품 점검 작업대에서는 앳된 청년 직원이 돋보기 기능이 있는 투명비닐을 한손에 들고 한매당 5만원권 총 28장(가로 7장, 세로 4줄)이 인쇄돼 있는 대형전지를 익숙한 솜씨로 살펴보고 있었다. 잉크가 옆으로 새나가 색상이 번졌는지, 맞춤이 불량한지 등을 검사한다. 5만원권에 새겨져 있는 각종 위조방지장치는 22개나 된다. 1500℃ 열로 부착하는 띠형 홀로그램, 숨은 은선, 부분노출 은선, 미세문자, 기번호, 숨은그림 등 공개장치 16개 외에 숨겨진 장치 6개가 더 있는 “보안 인쇄물이자 예술품”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난지 부산에 있었던 조폐창은 1975년에 경산으로 옮겨와 포탄 공격에도 끄떡없는 지하방공시설에 인쇄기를 갖춰놓고 돈을 찍어냈다. 지금은 지상으로 공장을 옮겼다. 외곽 담장 2.9㎞, 내곽 담장 1.9㎞가 설치된 철통경계 속에 외부침입 시도는 조폐창 설립 이래 단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이곳 조폐창은 은행권·주화뿐 아니라 자기앞수표, 여권, 우표·증지, 주민등록증, 각종 상품권, 메달·훈장 등 110여개 종류의 상품을 제조하는 국내 유일의 제조공기업이다. 타이 바트화 등 몇 개국 외국 동전도 여기서 만들어 납품·수출한다. 지폐공장 앞에 있는 주화생산공장 벽에는 10원짜리가 올들어 이날까지 1억1135만개 생산됐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19일 한은이 내놓은 ‘5만원권 발행 10년의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5월말 현재 시중에 유통중인 지폐 은행권(1천원~5만원권 총 116조1천억원·잔액) 중 5만원권은 금액으로 84.6%(98조3천억원), 장수(은행권 전체 53억3천만장)로 36.9%(19억7천만장)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2주일가량 유통되다 폐기되는 10만원 자기앞수표 교환(및 창구 제시) 장수는 2008년 9억3천만장에서 2018년 8천만장으로 대폭 줄었다.

경산/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