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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개혁정책의 유연성’ 강조한 김상조의 속뜻은?

등록 2019-06-30 09:59수정 2019-06-30 13:22

“개혁은 혁명 아닌 진화…법률 만능주의 반대”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벤처 차등의결권 찬성
재벌개혁에 한 뜻…속도·강도 진보진영과 이견
진보진영 “소수성 속도 조절·규제 완화” 전망
재계·시민사회와 소통 강조하며 ‘중도노선’ 제시
지난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수현 전 정책실장.
지난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과 김수현 전 정책실장.
김상조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의 기용으로 향후 정부정책이 어떻게 변화할지 경제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실장은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데다 정책 추진력이 강하고 아이디어도 많아 ‘위기관리’에 치중했던 김수현 전 실장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 실장은 지난 25일 첫 청와대 기자간담회에서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를 세 축으로 혁신적 포용국가와 사람중심경제를 만든다는 정책기조를 유지할 것이라며 ‘일관성’을 강조했다. 또한 경제환경에 맞춰 정책을 보완하고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유연성’에도 방점을 뒀다. 이에 따라 향후 정책의 일관성과 유연성을 어떻게 조합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

김 실장은 이와 관련해 “지난 2년간 (내가) 어떤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왔는지를 살펴보라”며 ‘힌트’를 줬다. 대표적 사례로는 재벌규제의 상징이었던 출자총액제한제의 부할 반대가 꼽힌다. 출총제는 재벌의 무분별한 확장을 막기 위해 계열사 간 출자를 제한하는 제도로, 이명박 정부 시절 폐지됐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인 2017년 1월 ‘10대그룹 출총제 부활’을 포함한 재벌개혁안을 발표해 재벌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당시 교수 신분이었던 김 실장은 “실제 경제적 효과는 크지 않으면서 정치적 논란만 가중시켜 개혁에 역작용만 일으킬 것”이라며 반대했다. 김 실장이 문재인 캠프에 영입돼 개혁정책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하면서 출총제 부활은 대선공약에서 사라졌다.

두번째 사례는 김 실장이 공정위원장 시절 강조한 재벌개혁 3단계 전략이다. 우선 현행법으로 엄정하게 법집행을 하고(1단계), 그것으로 담을 수 없는 분야는 재벌의 자율개혁을 유도하며(2단계), 그것으로도 미흡한 부분은 법제도를 개정하는(3단계) 내용이다. 이는 김 실장의 친정격인 진보진영이 재벌 지배구조 개선과 일감 몰아주기 근절을 위해 상법과 공정거래법 개정을 정부 초기 최우선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부딪혔다. 김 실장이 법제도 개편을 늦춘 것은 여소야대 국회라는 현실 조건을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본인 특유의 개혁론에 대한 강한 소신이 바탕에 깔려있다. 그는 대선캠프 시절 “재벌개혁에 성공하려면 몇가지 법개정이나 대통령 의지만으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 2017년 12월 공정위 기자간담회에서는 “우리사회를 바꾸는 방법은 혁명이 아닌 진화이다. 지속가능하고 예측가능하게 세상을 조금씩 조금씩 후퇴하지 않으면서 누적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7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는 “법을 고쳐서 개혁을 하자는 법률 만능주의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총선이나 대선에서 지면 바로 뒤집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번째는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 찬성이다. 정부·여당은 지난해 금융과 아이티(IT)를 융합한 핀테크 활성화를 이유로 아이시티(ICT·정보통신기술) 기업에 한해 은행 지분보유 한도를 4%에서 34%로 확대하는 방안을 성사시켰다. 진보진영은 은행의 재벌 사금고화를 막기 위한 은산분리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재벌이 너도나도 은행을 갖고자 했던 시절이 지났고, 금융감독당국이 금융그룹통합감독시스템 등 사금고화 위험성을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시작했다”며 “2002년 만들어진 현행 은행법의 은산분리 규정을 한 글자도 고치면 안 되는 금과옥조로 여기는데 동의할 수 없다”고 진보진영을 비판했다.

그가 벤처기업 차등의결권 허용에 찬성하는 것도 비슷한 모양새다. 정부여당은 창업 활성화를 이유로 벤처기업에 한해 1주에 2개 이상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재벌총수의 전횡이 심한 상황에서 경영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며 반대한다. 김 실장은 차등의결권을 대기업에 허용하는 것은 반대지만, 중소벤처가 상장할 때 허용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김 실장은 진보진영의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에서 오랫동안 경제민주화운동을 했다. 문 대통령이 그를 영입한 주요한 이유도 ‘재벌개혁 전도사’라는 상징성 때문이다. 김 실장은 지금도 재벌개혁을 시대적 과제로 강조한다. 하지만 개별 정책의 우선순위, 속도, 강도 등 방법론에서는 진보진영과 적지 않은 이견을 보여왔다. 그는 지난해 7월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진보진영의 개혁 조급증·경직성 때문에 오히려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실패할 수 있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병천 강원대 명예교수,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 등 진보성향 지식인들은 곧바로 ’지식인선언’을 통해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고,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실장이 정책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정책의 우선순위 조정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진보진영에서는 벌써부터 공정경제 강화보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속도 조절,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완화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력한 규제완화 방안으로는 재계가 강력히 요구하고, 정부·여당도 이미 수용 방침을 세운 빅데이터 등 신산업을 위한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법, 서비스업 활성화를 위한 서비스산업발전법, 기업 사업재편을 지원하는 기업활력법 일몰연장이 꼽힌다. 김 실장은 지난해부터 언론 인터뷰를 통해 개인정보보호 규제 완화와 서비스산업발전법 처리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차기 공정위원장 후보로 거론되는 참여연대 출신인 김남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은 “신산업 육성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부담을 완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규제완화를 강조하면서 재벌 지배구조 개선, 일감몰아주기와 갑질 근절, 중소기업 육성 등 개혁 과제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김 실장은 보수와 진보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위험성이 높다. 김 실장이 소득주도성장과 공정경제 등 개혁정책을 완전히 포기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개혁 포기를 요구하는 보수진영과 재계의 지지와 협조를 얻기도 힘들어 보인다. 그의 3단계 재벌개혁 전략이 좋은 예다. 진보진영의 대표적 경제학자인 전성인 교수는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중요한 법개정일수록 정권의 힘이 있는 초기에 추진해야 하는데, 개혁의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반대로 재벌들은 “경제와 경영이 어려운데, 기업들만 더 힘들게 한다”고 불만이다.

김 실장도 이를 염두에 둔 듯 국회·재계·노동계·시민사회 등 여러 이해관계자와의 소통을 강조했다. 또 “(보수와 진보로부터) 정반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과제들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개혁에 성공하는 유일한 길은 그 가운데 길로 일관되고 예측가능하게 가는 것밖에 없다”며 ‘중도노선’을 내세웠다. 하지만 재벌 중심 성장전략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가운데 재벌도 죽이지 않으면서 새로운 성장과 일자리 창출 방식도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기계적 중도노선은 자칫 ‘미래 방향성’과 ‘현실 수용성’을 모두 놓칠 위험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김 실장이 문재인 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작은 현안에 매달리는 대신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재벌개혁과 규제완화, 노사협력 등 핵심 과제에 대해 일괄 타결을 하는 ‘사회적 대타협’이나 ‘빅딜’ 같은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서동원 전 규제개혁위원장은 “재계가 요구하는 공정거래법의 사전적 재벌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대신 시민사회가 요구하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 법위반 기업의 책임을 엄하게 묻는 집단소송제 등 사후적 규제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이른바 ‘규제 빅딜’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또 최저임금 인상 논란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고소득 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자제와 생산성 향상 노력, 대기업의 상생 노력과 자발적 개혁, 정부의 복지 확대 등을 패키지로 묶어 일괄 타결하는 방안이 제시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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