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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영어 번역투에서 벗어나자

등록 2019-07-12 08:59수정 2019-07-12 22:09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① 글 쓸 때도 사람이 먼저다

②‘대한’을 대하는 자세

③‘의’와 전쟁을 선언하라

④‘빵들과 장미들’이 어색한 이유

⑤ 갖지 말고 버리자

⑥ ‘것’을 줄여쓰라

⑦ 주어에 서술어를 응답하라

쌍상에 맞춰 ‘응답하라’

동사가 먼저다

⑩ 좋은 글은 ‘갑질’하지 않는다

⑪ 중언부언 말자

이미지 투데이
이미지 투데이
‘그는 유학을 가기 위해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이 문장엔 번역투 표현이 들어 있다. ‘~을 위하여’는 번역투 표현이다. ‘위하여’는 영어(for, in behalf of, in the interest of) 번역에서 왔다. ‘위하여’는 앞 내용을 강조하려고 주로 쓴다. ‘그는 유학을 가려고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처럼 ‘~하려고’ 정도로 바꿔주는 게 자연스럽다.

‘그는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신뢰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문장 역시 ‘위해서’가 나온다. 목적어로 쓰인 명사(회생)를 서술어인 동사(회생하려면)로 바꿔주면 훨씬 우리말다운 표현이 된다. ‘그는 경제를 회생하려면 신뢰회복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부가 경제대책위원회를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 문장에 나오는 ‘불구하고’도 영어(in spite of, even though)에서 나온 번역투다. 굳이 ‘불구하고’를 써서 강조할 일이 아닌데도 자주 쓰는 경우가 많다. ‘불구하고’는 앞에 나오는 내용과 뒤에 나오는 내용이 다를 때 자주 쓴다. ‘~에도’ ‘~인데도’로 바꿔 쓰는 게 훨씬 우리말답다.

‘불구하고’를 없애도 앞과 뒤 내용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굳이 쓸 필요가 없는 단어는 쓰지 않는 게 낫다. ‘오늘은 임시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하는 회사원이 많았다.’ 이 문장에도 ‘불구하고’가 있다. 지우자. ‘오늘은 임시 공휴일이었지만 출근하는 회사원이 많았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영어(must be)에서 나온 표현이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와 같은 표현을 이중부정이라고 한다. ‘하지 않으면’‘안 된다’ 부정 표현이 두 번이나 나왔다. 영어 시간에 이중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을 배웠다.

이중부정은 좋은 문장이 아니다. 부정 표현이 문장에서 두 번씩 나오면 읽는 사람이 곧바로 이해하기 힘들다. 글이란 읽으면서 바로 이해해야 하는데, 이중부정으로 된 문장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긍정적으로 쓰는 게 좋다.

‘성공하려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문장도 이중부정이다. 간략하게 글을 바꿔보자. ‘성공하려면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글이 짧아졌고 한번 쓱 보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법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장을 빨리 읽으면 ‘법을 지켜야 한다’는 건지,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건지 금방 와닿지 않는다. 이 문장 역시 이중부정을 강한 긍정 표현으로 고치는 게 좋다. ‘우리는 법을 지켜야 한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역시 영어(can't be too emphasized)식 표현이다. ‘하지 않을 수 없다’처럼 이중부정이다. 이 표현 역시 긍정의 뜻을 살린 다른 표현으로 고쳐주는 게 좋다. ‘건강하게 사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중부정으로 돼 있어 곧바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중요하다’로 바꿔주면 문장을 간결하게 줄일 수 있다. ‘건강하게 사는 것’ 역시 주어를 ‘건강’이라고 수정하면 ‘~것’ 표현을 피할 수 있다. ‘건강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 문장 역시 손을 봐야 한다. ‘국가가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로 고칠 수 있다. 더 줄일 수도 있다. ‘국가는 국민 안전을 마땅히 책임져야 한다.’

번역투가 좋지 않은 이유

‘~이 요청된다’ ‘~이 요구된다’도 영어(be need to, be required for)에서 온 표현이다. 영어 번역투이기도 하지만, 피동형 문장이기도 하다. 다음에 다루겠지만 피동형은 소극적인 표현이다. 능동형으로 문장을 쓰는 게 좋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대변혁이 요청된다.’ 이 문장에서 ‘대변혁이 요청된다’가 나온다. ‘~요청된다’란 표현을 쓰면 피동형 문장이 될 수밖에 없다. 수동형을 쓰면 글 힘이 떨어진다. 내가 하고픈 말을 드러내놓고 하는 게 아니라 힘이 없는 목소리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느낌을 준다. ‘요청된다’를 ‘바꿔야 한다’로 고쳐주는 게 좋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는 것과 대변혁은 같은 의미다. 대변혁을 빼는 게 낫다.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가난한 사람의 제대로 된 생활을 위한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여기서도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로 문장을 마쳤다. 이전처럼 피동형으로 돼 있다. ‘요구된다’를 다른 표현으로 고쳐주고 능동형으로 바꿔주는 게 좋다. ‘대책’은 어떻게 하는 건가? ‘세우는’ 거다. 대책과 어울리는 동사는 ‘마련하다’ ‘세우다’가 있다. 마련이라는 어려운 한자어보다 쉬운 세우다가 더 낫겠다.

‘가난한 사람의 제대로 된 생활’은 어떤가? 너무 긴데다 문장이 엉켜 제대로 뜻을 파악하기 어렵다. 여기서도 ‘제대로 된’처럼 피동형 표현이 들어 있다. 능동형으로 고치자. ‘가난한 사람이 제대로 생활하도록’ 이렇게 고치면 어떨까? 이렇게 수정하면 능동형 문장이다. ‘가난한 사람이 제대로 생활하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번역투가 좋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쓰는 말과 달라 가독성이 떨어지고, 우리 고유 문체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오덕 선생은 번역투의 글을 ‘병든 글’이라고 했으며, 이수열 선생은 ‘때 묻는 글’이라고 했다. 자신의 문장을 살펴보자. 아무런 생각 없이 번역체를 남용하진 않았을까?

정혁준 편집장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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