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러블메이커(trouble-maker). 일본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본인은 어릴 때부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으며 자랍니다. 하지만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동아시아의 ‘트러블메이커’가 되려 하는 듯합니다.
한-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진앙에 아베 총리가 있습니다. 그 시발은, 아베 신조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을 빌미로 수출규제라는 보복 카드를 꺼내들면서입니다. 2018년 10월30일 우리나라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아베 대응이 ‘미쓰비시 방어용’이라는 얘기가 솔솔 나옵니다. 아베는 일본 세이케이대학을 나왔습니다. 미쓰비시 계열 학교로 역대 이사장이 모두 미쓰비시 임원 출신입니다. 아베 형인 히로노부는 미쓰비시그룹 계열인 미쓰비시상사 패키징 사장입니다.
미쓰비시중공업은 방위산업체로, 자민당에 정치헌금을 하는 큰손입니다. 저는 저런 개인적인 이유로 한 나라 총리가 그런 ‘도발’을 하는 속 좁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하기 싫습니다.
그저 제 생각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내 지지자의 적 만들기’입니다. 그동안 일본 보수는 핵, 미사일, 납북 문제를 빌미로 북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정치 기반을 다졌습니다. 최근 남북관계가 다소 개선되면서 이 기조가 힘들어지자 한국으로 대상을 바꾼 거지요. 정치를 위해 경제를 희생양 삼은 셈입니다.
둘째는 ‘단기 성과 보여주기’입니다. 삼성과 현대자동차 같은 한국 글로벌 기업이 일본 기업을 치고 올라가자, 일본 기업 강점인 기초소재로 발목을 잡으려 한 거죠. 단기 성과를 보여주기엔 딱 좋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아베의 이런 행동은 오히려 일본에 부메랑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베 도발에 한국에선 일본 제품 불매와 일본 여행 안 가기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베 지지의 한 축인 자영업자에게 피해를 주고 지역경제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입니다. 기초소재 수출규제 역시 일본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현대차는 1975년 포니를 내놓을 때 미쓰비시자동차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할 만큼 기술이 떨어졌습니다. 1980년대 삼성전자에 소니와 파나소닉은 ‘넘사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엠에프(IMF) 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기업은 경쟁력을 키워 자동차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여러 일본 기업을 제쳤습니다. 미쓰비시, 마쓰다, 스바루, 스즈키, 이스즈와 같은 자동차 기업. 산요, 샤프, 파나소닉, 후지쯔, NEC, 도시바, 카시오 같은 기업들은 이미 한국기업에 나가떨어졌습니다.
아베는 우리가 이런 장밋빛에 취해 잊고 있던 소재 부문 경쟁력을 곰곰이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1970~80년대 높디높아 보인 일본 대기업을 우리가 제친 것처럼 10~20년 뒤엔 소재 분야도 그럴 것이라고 기대해봅니다. 훗날 정치를 위해 경제를 희생하고, 단기 성과를 위해 자신들이 잘 만드는 제품 수출을 규제한 아베 정책은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아베에게 일본말로 ‘아리가토’(고맙다)라고 해야 할지 모릅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