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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중국을 때렸는데 한국이 골병…‘포스트 차이나’ 시대 준비해야

등록 2019-08-16 05:00수정 2019-08-16 11:25

트럼프발 ‘무역분쟁’ 장기화로
중 상반기 대미수출 8.1% 줄었지만
전체 수출액 전년비 0.1% 가소 그쳐
한국은 상반기 대중 수출 17% 감소
자립경제 전환 중국, 기술추격 ‘턱밑’
고부가 소재·부품 등 기술혁신 나서야
기축통화 발행국은 세계 경제 규모가 커짐에 따라 유동성을 늘려 공급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피할 수가 없다. 미국은 이런 숙명에 거칠게 화를 낸 적이 있다. 독일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이 경상수지 흑자를 쌓아 순채권국 지위를 굳혀가던 1980년대 초 미국은 강력한 견제에 나섰다. 결국 1985년, 엔화 가치를 끌어올려 무역불균형을 해소한다는 ‘플라자 합의’로 큰 틀의 협상을 타결지었다. 엔화 가치는 초강세로 흘러갔다. 일본은 급변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미끄러졌다.

이번에는 일본을 제치고 2011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중국이 미국의 타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대통령 선거 유세 때 중국의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를 ‘미국의 공장을 빼앗고 일자리를 빼앗는 일’로 규정하고, 이렇게 공언했다.

“트럼프 행정부 첫날, 미국 재무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이다.”(2015년 11월9일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

“나는 자유무역주의자이지만, 자유무역이란 공정해야 한다. 중국산 수입품에 45%의 관세를 매기겠다.”(2016년 1월5일 <뉴욕 타임스> 편집인들과 대화)

미국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공약을 이행해가고 있다. 2018년 3월22일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세 차례에 걸쳐 추가 관세 부과를 실행에 옮겼다. 현재 25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 차원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다.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와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 등 다른 보호무역 조처들이 취해지면서 세계 교역량은 줄고 있다. 네덜란드 경제기획국(CPB)이 집계한 세계 교역지수를 보면, 2018년 10월 127.2(2015년=100)로 최고치에 이른 뒤 하락세로 전환해, 지난 5월 124.5에 머물고 있다.

미-중 간 교역은 큰 폭으로 줄었다. 중국해관총서(관세청)는 올해 상반기 중국의 대미 수출액이 199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감소했다고 7월12일 발표했다. 중국의 수입액은 589억달러에 그쳐, 29.9%나 감소했다. 물론 무역적자를 줄이겠다는 트럼프의 시도는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2020년까지 연간 3750억달러(2017년 기준)에 이르는 무역흑자 가운데 2천억달러를 감축하라며 압박해왔지만,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미 수출의 큰 폭 감소에도 중국의 상반기 전체 수출액은 지난해에 견줘 0.1% 감소하는 데 그쳤다. 유럽연합(6.0%)과 아세안(7.9%)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8년 한국 전체 수출액의 26.8%를 차지한 중국 시장에서 한국의 타격은 크다. 올해 상반기 대중국 수출은 17%나 감소했다. 가격 급락으로 수출액이 34.1%나 감소한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해도 감소율은 11%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비중이 큰 까닭에 악영향이 다른 나라에 견줘 더 컸다. 한국무역협회 분석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는 중간재 수출 비중이 79%로 일본(62.1%)과 독일(61.0%)에 비해 훨씬 크고 대만과 비슷하다. 실제 중국해관총서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중국의 국가별 수입액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14.6%)는 대만(-7.0%), 일본(-6.4%), 독일(+0.8%)에 비해 감소폭이 훨씬 컸다.

미-중 대립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중국이 ‘주권과 존엄’을 훼손하는 합의는 어렵다며 7월말 협상에서도 버티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추가 관세를 물리지 않고 있던 3천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 9월부터 10%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고 지난 1일 밝혔다. 다만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 소비재에 대해서는 크리스마스 시즌 이후인 12월15일부터로 시행 시기를 연기했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추가 관세 대상이 되면, 메모리 반도체 등 중간재를 공급하는 우리나라의 수출 타격은 훨씬 커진다. 관세 부과가 오래 이어지면, 중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 사슬에도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일부 일본 기업은 이미 중국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로 생산기지를 이전했거나, 이전을 모색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무역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미국은 관세율 추가 인상 등으로 중국 압박을 한층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우리나라는 수출 감소뿐 아니라 불확실성의 확대로 기업 설비투자가 지연되면서 실물경제가 입는 타격이 급격히 커지게 된다.

무역 협상이 타결된다고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문병기 한국무역협회 동향분석실 수석연구원은 “중국이 대미 무역흑자를 줄이기 위해 석유화학, 반도체 등을 미국에서 더 구매하는 쪽으로 미국과 합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게다가 미국은 기술 패권 대결을 멈추지 않은 채, 중국에 자본시장 개방을 요구하는 등 다른 방향에서 중국에 대한 공세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미-중 대결 국면은 중국의 성장에 기대어 한국도 쉽게 성장을 구가하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미-중 무역분쟁 이전부터 생산기지형 수출·투자 경제에서 자립 경제로 전환해가고 있었다. 가공무역 비중을 줄이고, 기술 추격에 매진해왔다. 한국 기업이 중국에 진출해 제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중간재의 수요는 추세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근 중국 수출 감소는 이런 변화 흐름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고부가가치 소재·부품과 하이테크놀로지 분야에서 활로를 찾지 못하면 추격해오는 중국 등 신흥국들에 한국 경제가 뒷덜미를 잡힐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 사슬에서 한국, 중국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일본도 미-중 대립 속에 수출 타격이 크다. 일본은 상반기 대중국 수출이 6.2% 감소했고, 한국 수출은 13.3% 줄었다. 일본 제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가 소재와 부품이다. 그동안 한국에 시장을 계속 빼앗기고, 중국의 추격도 걱정하는 일본이 한-일 과거사 갈등 과정에서 한국에 ‘소재·부품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일본 경제 위기감과 전혀 무관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은 2012년 말 아베 신조 내각 등장 이후 엔화 약세를 이끌어 수출 주도로 경제에 활력을 찾았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안전 자산의 저주’, 즉 엔화 강세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어, 지금은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되고 있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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