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에서 요금수납원 고용안정 방안을 발표하던 중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도로공사(도공)가 과거 불법파견 형식으로 고용 관계를 유지했던 톨게이트 수납원을 최대 499명까지 직접고용하기로 했다. 대법원이 소송 6년 만에 확정판결을 내린 데 따른 후속 조처다. 그러나 직접고용을 해도 이들은 톨게이트 수납업무를 담당할 수 없으며 도공은 1·2심 진행 중인 소송을 계속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72일째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노조(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노조 등)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악랄한 방안”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난달 대법원 판결로 승소한 700여명 중 당장 도공이 직접고용해야 하는 인원은 자회사 입사를 거부한 296명과 고용이 단절된 203명이다. ‘고용단절자’는 과거 불법파견 상태에서 2년 이상을 톨게이트 수납원으로 근무했지만 파견업체를 퇴사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도공 직원이라는 점이 확인됐지만, 입사를 해도 이전처럼 톨게이트 수납 업무를 할 순 없다. 지난 7월 도공이 자회사를 만들어 수납 업무를 모두 넘겼기 때문이다. 이들이 도공 정규직이 되면 버스정류장·졸음쉼터 환경정비 등 현장 조무직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크다.
9일 직접고용 방침을 브리핑한 이강래 사장은 “어떤 업무를 부여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과제인데 이를 찾기 위해서 티에프를 구성해서 검토 중”이라며 “이분들의 근무지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었는데 수도권 업무를 찾아내면 희망지에 배치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정에 따라 원치 않은 곳으로 불가피하게 전환배치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이 6년 투쟁 끝에 정규직 확인을 받았지만 직무·근무지 변경이라는 ‘위험요소’를 떠안게 된 것이다. 특정업무를 자회사로 떼어내거나 이로 인한 직무조정은 모두 경영권의 재량으로 볼 수 있다는 법원 판례를 들어 이들에게 다른 업무를 부여하는 것에 법률적 문제는 없다는 게 도공의 설명이다.
도공은 현재 하급심 진행 중인 톨게이트 수납원 직접고용 소송도 계속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2심 진행 중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원고는 6556명이며 이중 자회사 입사 거부자는 1047명, 고용단절자는 1125명이다. 노조는 대법원 확정 판결 취지에 따라 이들도 직접고용 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도공은 “개별적 특성에 차이가 있어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도공은 2015년 이후 용역계약 과업지시서를 전면 개정하고 도공의 ‘상시 감독’을 ‘간헐적 순회 검증’으로 바꾸는 등 불법파견 요소를 제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단, 소송이 길어지는 만큼 이들 노동자들의 자회사 입사 및 도공 기간제 채용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사장은 “이분들에게 드릴 수 있는 (수납업무)선택지는 안타깝지만 현재로썬 없다. 수납업무 하실 거면 자회사 선택해줄 것을 간곡하게 호소드린다”고 말했다.
9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톨게이트노조 소속 수납원들이 한국도로공사의 직접고용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에 남정수 민주일반연맹 교육선전실장은 “대법원 판결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로, 직접고용 인원을 사실상 협박해 자회사로 보내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밝힌 것”이라고 비판했다. 직접고용 인원 중 특히 장애가 있는 노동자에게 감당하기 힘든 업무를 맡기거나, 출퇴근이 힘든 곳으로 보내는 방법을 동원해 자회사로 가라고 강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병종 톨게이트노조 부위원장도 “지난주 톨게이트노조와 실무교섭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까지는 나오지 않았는데 너무 당황스럽다. 1·2심 진행 중인 노동자들까지도 갈기갈기 찢어놓겠다는 것이어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민주일반연맹 등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 300여명은 이날 오후 경북 김천의 도공 본사를 항의 방문하고, 사장실 기습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이들 요금수납원들은 현재 서울요금소와 청와대 앞에서 이어오고 있는 캐노피·천막 농성도 이어갈 계획이다. 또 톨게이트노조 쪽은 현재 진행 중인 소송에 탄원서를 내고 근로자지위보전 가처분 소송을 제기하는 한편, 국민감사청구도 제기할 예정이다.
김태규 조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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