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섭의 포토인] 물방울이 사슴과 함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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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근처에 효창공원이 있다. 8월에 접어든 어느 날 공원 옆길을 걸었는데 매미 우는 소리가 작렬했다. 여름 풍경을 소리로 표현한다면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 것이 매미 울음 아니겠는가.

마침 옆에서 또 다른 여름 풍경이 지나가고 있었다. 소독차가 비릿한 휘발유 냄새와 함께 연기를 뿜었다. 소독차 뒤를 따라가는 동네 꼬마는 없었다. 요즘 보기 드문 과일 트럭이 녹음 소리를 확성기로 울리면서 나타났다가 어느덧 사라졌다.

한 할아버지가 민소매 그물망 조끼와 반바지 차림으로 땀을 닦으며 허위허위 언덕을 올라왔다. 이 더운 날에 농구공을 든 학생 두 명이 공원 입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공원 담장 너머로 진한 녹색의 플라타너스 잎을 배경으로 능소화 꽃잎이 후보정이나 한 듯 과장된 붉은색을 마냥 공중에 날리고 있었다.

공원 철제 울타리에는 십장생이 조각돼 있다. 가만 보니 사슴이 침을 한 방울 흘리는 것 같았다. 더위를 먹었나 싶어 눈을 닦고 다시 보니 물방울이 떨어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었다. 중력을 무시할 수 있다니….

아주 가까이 가서 보니 실체를 알 수 있었다. 티끌 같은 것이 사슴 입에서 늘어진 거미줄에 붙들렸고 어제 내린 소나기가 남긴 물방울이 티끌에 붙었다. 물방울 모양을 몇 시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명백히 표면장력 덕분이다.

날이 더워져서 곧 증발할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습도가 너무 높아 수분을 계속 공급받으면 한동안 저러고 있을 것도 같았다(궁금해서 나중에 확인해보니 무려 5시간째 매달려 있었는데 그 다음날엔 물방울이 사라지고 티끌만 남아 있었다).

사슴 입을 중심으로 클로즈업해서 찍었더니 사슴이 별안간 이집트 벽화에 등장하는 아누비스처럼 보였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낮 풍경이다. 이제나저제나 매미 울음이 잦아들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여름 풍경이 그리워질지도 모르겠다.

글·사진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