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세계무역기구(WTO) 개발도상국 지위 포기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개도국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세계무역기구 내에서 다른 개발도상국들이 한국의 개도국 특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어 향후 특혜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익을 우선해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처음으로 ‘개도국 특혜 관련 동향 및 대응 방향’을 안건으로 올린 뒤 내놓은 발언이어서 개도국 지위 포기 가능성을 뜻하는 발언으로 읽힌다. 다만 그는 “개도국 특혜는 향후 국내 농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 매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세계무역기구 개도국 지위가 국내 통상의 의제로 떠오른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다. 그는 지난 7월 ‘비교적 발전한 국가’가 세계무역기구 안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며, 향후 90일 안에 세계무역기구가 이에 대한 진전된 방안을 내놓지 않으면 미국 정부가 해당 국가들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당시 선진국 지위에 올라서게 된 사실을 인정했지만, 농산물에 대해서는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영세한 국내 농업을 보호하기 위해 수입 농산물에 대한 보조금과 관세 정책 등을 포기하기 어려운 처지였기 때문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중함을 유지하면서 3가지 원칙 아래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국익을 우선으로 하고, 우리 경제의 위상과 대내외 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며, 농업계 등 이해 당사자와 충분한 소통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이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농업 협상이 없고, 예정된 협상도 없는 만큼 한국은 농산물 관세율, 보조금 등 기존 혜택에 당장 영향이 없다”며 개도국 지위 유지 여부에 따른 파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은 쌀을 수입할 때 40만9천t 규모까지는 낮은 관세를 유지하지만, 해당 규모(저율관세할당물량·TRQ)를 넘어서는 수입분에 대해서는 513%의 관세를 물리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과 중국, 호주, 타이, 베트남 등 주요 쌀 수출국은 이의를 제기해 왔다.
이날 회의에는 세계무역기구 개도국 특혜 관련 동향 및 대응 방향, 쌀 관세화 검증 결과 및 향후 추진계획 등이 논의됐다. 다만 홍 부총리는 회의를 마친 뒤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아직 정부의 방침이 결정되지 않았다. 10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결정하려고 목표하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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