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7위인 한화그룹의 주력사 ㈜한화가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유용(탈취)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았다. 대기업이 하도급업체의 기술을 다른 중소기업에 제공하는 기술유용 사례는 더러 있었는데, 이번처럼 자체 개발·생산에 유용한 것은 첫번째 사례다. 한화는 방위산업 계열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옛 한화테크윈)의 ‘노동조합 파괴’ 실상을 담은 문건이 공개된 데 이어 악재가 겹쳤다.
공정위는 30일 ㈜한화가 하도급업체인 에스제이(SJ)이노테크의 태양광 전지 제조라인 설비(스크린프린터)에 관한 기술자료를 유용한 것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8200만원을 부과했다. 또 법인과 관련 임직원 3명은 검찰에 고발했다. 태양광 스크린프린터는 액체화된 금속가루를 실리콘 기판의 표면에 인쇄해 원하는 형태와 두께로 회로 선로를 형성시키는 장비다.
㈜한화는 2011년 한화 계열사에 태양광 전지 제조라인을 공급하면서 에스제이이노테크에 그 일부인 스크린프린터를 제조 위탁하는 하도급 계약서를 체결했다. 에스제이이노테크는 ㈜한화의 요구에 따라 2011~2014년 스크린프린터 관련 기술자료를 제출하고 2015년 11월 하도급 계약이 해지될 때까지 설계 변경, 기능 개선 등의 기술지원을 제공했다. ㈜한화는 2014년 9월 신규인력을 투입해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이어 2015년 7월 하도급업체와 유사한 스크린프린트 자체 제작을 끝내고 한화큐셀 말레이시아 법인에 출하했다. 공정위 기술유용감시팀의 이하나 과장은 “하도급업체와 ㈜한화의 스크린프린터 장치는 웨이퍼 이송방식 등에서 다른 제조사의 동작 방식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는 ㈜한화가 스크린프린터 부품목록 등이 표기된 도면, 세부 레이아웃 도면을 요구한 것도 정당한 기술자료 요청 사유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화는 또 법상 의무화된 기술자료 요청서면도 주지 않았다.
대기업의 기술유용은 단순히 해당 기업의 피해로 그치는 게 아니라 대-중소기업의 상생 기반을 무너뜨리고 전체 기업의 기술개발 동기와 혁신 역량을 떨어뜨리는 국가적 피해로 이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의 기술유용 근절을 약속했고, 공정위에 전담부서인 기술유용감시팀을 신설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 제재는 두산인프라코어, 아너스, 현대중공업에 이어 4번째다.
㈜한화는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유용은 실정법의 제재를 떠나 한화의 경영방침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며 “하도급업체는 ‘기술유용’을, 당사 기술진은 ‘자체 개발’을 주장해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또 “공정위의 판단을 겸허히 수용하고, 앞으로 당사가 주장해온 실체적 사실들을 가감없이 소명하여 법적 판단을 구할 예정”이라며 “기술유용으로 결론나면 마땅히 법적·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화는 조사과정에서 하도급업체의 기술이 이미 널리 알려진 범용기술로서 영국의 디이케이(DEK), 이탈리아의 바찌니, 대만 에티엠에이(ATMA)도 사용 중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 Weconomy 홈페이지 바로가기: https://www.hani.co.kr/arti/economy◎ Weconomy 페이스북 바로가기: https://www.facebook.com/econoh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