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욱 통계청장이 11일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강 청장은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실장이던 지난해 5월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법으로 정해진 문서 승인 절차를 건너뛰고 통계청에 구두 요청했던 가계동향조사 세부 데이터를 받아 소득 분배 악화 원인을 진단하는 데 사용했다. <연합뉴스>
청와대와 정부가 정책의 정당성을 알리려고 법 절차를 건너뛰는 등 무리하게 통계를 활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할 통계청을 둘러싼 정치적 잡음이 커지는 모양새다.
1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통계청·관세청·조달청 국정감사에서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청와대가 지난해 통계청의 소득 통계 자료를 불법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추 의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난해 5월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소득 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2018년 1분기 가계동향조사’ 발표 당일 통계청 담당 직원을 청와대로 불렀다. 그 자리에는 당시 국책연구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 소득보장정책연구실장으로 있던 강신욱 통계청장도 함께 있었다.
추 의원은 “홍장표 수석이 통계청 직원에게 ‘심층 분석을 해야 하니 강신욱 실장에게 마이크로데이터를 보내주라’고 했고, 통계청은 다음날 해당 자료를 강 실장에게 보냈다”고 말했다. 추 의원은 이후 ‘소득 분배 악화의 주된 원인은 통계에 새로운 표본이 많이 늘었기 때문’이라는 강 실장의 보고 결과가 전달됐고, 청와대가 이를 근거로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문제없다고 홍보했다고 밝혔다.
추 의원은 “해당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하려면 통계법에 따라 문서 또는 전자문서로 신청해야 하고 타인에게 제공하는 것도 금지된다. 홍장표 수석이 (직원에게) 구두로 통계 자료를 요청해 강 실장에게 주라고 한 것은 명백한 통계법 위반”이라고 말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이에 대해 “당시 국책연구기관에 근무하면서 심층 분석이 필요하다고 이해해서 (청와대에) 갔다”며 “그런 과정에 관여한 것은 인정한다. 당시엔 자세한 내용(불법 여부)을 몰랐다. 향후 통계청에 근무하면서 재발하지 않도록 보완 절차를 운영하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지니계수(소득 격차 지표)가 개선됐다’고 발표한 것도 논란이 됐다.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니계수는 원래 통계청이 연말에 한차례 1인 가구를 포함한 자료를 바탕으로 공식 발표하는데, 기재부가 최근 전례 없이 1인 가구를 제외한 자료로 지니계수를 자체 계산했다”며 “다른 기관이 유의미하지 않은 분석 결과로 통계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데 왜 통계청은 가만히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이에 강신욱 청장은 “합법적으로 공개된 데이터를 잘못 계산한 게 아니면 통계 분석과 발표는 분석자들의 자율”이라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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