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중 무역분쟁이 본격화하며 세계경제 성장이 3%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내년에도 정책 불확실성이 이어지며 완만한 회복세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11일 발표한 ‘2020년 세계경제 전망’에서 세계경제 성장률이 올해 2.9%에서 내년 3.2%로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세계경제 성장률을 3.5%로 전망했는데, 1년새 0.6%포인트 떨어진 것이다. 이재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외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특히 미-중 통상분쟁이 폭과 깊이 면에서 더욱더 심화되면서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대단히 높아졌다”며 “2019년을 ‘무역전쟁 격화의 해’라고 한다면 2020년 세계경제 키워드는 ‘정책 불확실성의 지속’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주요 선진국들은 내년에도 둔화추세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은 미-중 무역분쟁의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가운데 통화정책·재정정책의 경기부양 효과가 감소하는 등 하방요인이 작용하는 가운데 2.0% 성장률에 그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2.3%보다 0.3%포인트 낮아진 수치다. 또 유로 지역과 영국은 독일의 경기 둔화 장기화와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관련 불확실성이 겹쳐 각각 1.1%와 1.0%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일본 역시 소비세율 인상 등이 내수에 영향을 미쳐 내년도 성장률이 0.4%에 그친다는 관측이다.
안성배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거시금융실장은 “선진국 성장세의 빠른 둔화가 올해 세계경제의 성장을 발목 잡았는데, 내년에도 상황이 아주 호전될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다만 신흥국들의 성장률이 내년에 대폭 좋아지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세계경제 성장률이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내년도 세계경제의 주요 하방요인으로 △미-중 무역분쟁의 향후 전개방향 △확장적 거시정책의 지속 여부 △지정학적 리스크 등을 꼽았다.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의 성장률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둔화할 것으로 예측됐다. 연구원은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6.2%, 내년 6.0%로 예측했다. 정부 주도의 경기부양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최근 중국 기업의 잇따른 채무불이행 선언(디폴트)과 홍콩 사태 장기화 등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것으로 봤다. 이밖에 인도는 최근 발표된 경기부양책의 효과로 내년에 6.2% 성장률을 기록해 올해(5.7%)보다 0.5%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전망됐다. 러시아는 1.1%에서 1.7%로, 브라질은 0.8%에서 1.8%로 각각 성장률 전망치가 상승했다.
한편 연구원은 이날 대외경제전문가 60명을 상대로 조사한 세계경제 동향 설문조사 결과도 함께 발표했다. 응답치 평균을 보면, 전문가들은 내년도 세계경제 성장률이 2.9%에 그칠 것으로 예측해 연구원 전망치(3.2%)보다 낮은 성장률을 예측했다. 전문가들이 꼽은 주요 경기 하방요인은 ‘무역 및 통상 갈등’, ‘주요국 경기 둔화’ 등이었다. 무역 및 통상 갈등을 꼽은 전문가들 가운데는 75%가 미-중 통상분쟁을 위험 요소로 꼽았다. 주요국 경기 둔화라고 응답한 전문가 가운데 32%는 중국, 25%는 미국 경기 둔화가 세계경제에 위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양대 초강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세계경제에 위협(G2 리스크)이 되고 있다는 응답인 셈이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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