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 젊음의 거리 인근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뉴 노멀’(New Normal). 요즘 자주 쓰이는 말이다. 과거와는 기준과 법칙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이전 경제 상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황이 일상화하니 ‘새로운 정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고도성장기를 한참 지난 선진국의 저성장은 비교적 자연스럽다. 하지만 저금리와 저물가의 장기화는 고전적 경기변동 사이클을 정면으로 거스른다. 저성장에 저금리와 저물가까지 고착되면서 ‘신 3저(低) 시대’가 본격 개막을 알렸다. ‘선진국 열차’ 마지막 칸에 올라탄 한국도 인류 역사에서 전례 없는 신 3저 영향권에 들어섰다.
2001년 미국에서 일어난 9·11 동시테러 이후 본격화한 세계적 저금리는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0%대 초저금리로 이어졌다. 유럽중앙은행(ECB)은 2016년부터 은행에 빌려주는 단기자금의 정책금리를 0%로 낮췄다. 독일과 프랑스 등 국채 금리는 마이너스고,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금리는 유럽 10여 개국에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은행에 돈을 맡겨놓고 이자를 받는 게 아니라 찾을 때 더 많은 수수료를 물어야 할 지경이다. 초저금리가 생활이 된 일본에선 집에 현금을 쌓아두는 ‘장롱예금’이 흔하다.
이렇게 20년 가까이 비정상적 저금리로 돈이 흘러넘치는데도 투자와 소비는 살아나지 않는다. 수출은 미-중 무역분쟁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경제성장의 세 기둥이 모두 흔들리니 성장률이 바닥을 길 수밖에 없다. 금리가 먹히지 않자,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도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여 직접 돈을 푸는 사상 최대의 ‘양적완화’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제 초저금리도, 넘쳐나는 유동성도 효과를 내지 못하는 이른바 ‘유동성 함정’에 빠지게 됐다.
투자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기만 하고, 늘어난 부채로 미래가 불안한 가계는 지갑을 닫은 채 돈이 쏠리는 부동산만 쳐다본다. 돈이 은행 밖으로만 나왔을 뿐 돌지 않으니 물가가 오르기는커녕 떨어질 조짐마저 보인다. 저물가는 일시적으로 소비자에게 이로울 수 있다. 하지만 가격 하락은 기업 실적 악화와 생산 축소를 부르고, 기업의 고용 축소에 따른 실업 증가로 이어진다. 실업은 가계 소비를 더욱 위축시켜 경기를 얼어붙게 한다. 경기침체(R)와 디플레이션(D)의 이른바 ‘R&D 공포’다.
선진국에 견줘 사정이 나은 편인 한국도 그 공포의 터널 입구에 섰다. 더욱이 한국은 저출생과 고령화 속도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이미 2018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등 인구감소라는 구조적 불황 요인이 성큼 다가왔다. 저성장을 넘어 경제가 축소하는 시대가 멀지 않은 것이다. 성장 둔화가 무엇보다 고민인 정부, 초저금리로 수익 내기도 빠듯한 금융권, 가격 하락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기업, 그리고 불안한 고용과 늘어나는 빚, 폭등하는 집값으로 주름살이 짙어가는 가계 등 경제주체가 새로운 정상이 되고 있는 ‘신 3저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점검해본다.
박중언 기자
parkj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