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중국어’를 시작한 지 열 달 됐다. 일주일에 5일, 하루 10분씩 중국인 강사와 통화한다. 10분이란 시간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예전에 텔레비전 녹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10분이 한 시간보다 길었다. 한번은 라디오 생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그날은 어쩐지 상태가 좋아 10분이 비교적 잘 지나갔다고 ‘거짓 기억’을 꾸미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벽에 걸린 시계를 수도 없이 쳐다봤다. 저거 고장 난 거 아냐?
중국 선양에서 전화가 걸려오기 전에 두 시간 정도 준비하면 10분은 금방 지나갈 수 있다. 바빠서, 게으름 같은 여러 이유로 제대로 준비 못하는 날이 훨씬 많다. 예를 들어 오후 3시에 전화가 온다고 하자. 다른 일을 하다 2시30분쯤 되면 교재를 뒤적이며 오늘 할 말을 지어본다. 작문이 제대로 될 리 없다. 30분이 3분처럼 빨리 흘러간다. 이윽고 3시 정각,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시간은 느리게 흘러간다. 예상 대화는 뻔하다. “점심은 뭘 먹었느냐? 오전에는 뭘 했느냐? 오후에는 뭘 할 거냐?”
그 이상 할 말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아직 그 이상은 대화할 수 없는 수준이다. 영화 이야기를 한다고 치자. 제목부터 막힌다. <어벤져스>는 중국어로 <复仇者联盟>이다. 우리말로 하면 ‘복수하는 사람들의 연맹’쯤 되겠다. 배우 이름도 일일이 외워야만 약간의 대화를 할 수 있으니 품이 많이 든다.
아무 준비를 못한 날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얼굴이 붉어지면서 혈압이 오르는 것을 느낄 정도가 돼야 간신히 10분이 채워지고, ‘밍톈 짜이젠’(明天再见·내일 봐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전화중국어는 혈압에 좋지 않다는 교훈(?)을 얻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만약 한국 사람과 취재가 아닌 일로 매일 10분씩 전화한다면 할 말이 있을까? 무슨 대화를 할까? 그래서 내린 결론은 예전에 다른 언어를 배우다가 포기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외국어를 잘하려면 수다쟁이가 돼야 한다. 취미도 다양해야 한다. 뭘 좋아하고 싫어하고, 뭘 잘하고 못하는지 명확해야 한다. 말주변이 없고, 취미도 전무하고, 결정장애가 있는 나에게 새로운 외국어는 인간개조만큼이나 난망함을 깨달았다.
사진 속 남자는 잔잔하고 깊은 흑백 풍경 사진으로 유명한 영국 출신 사진가
마이클 케나다. 2년 전 이맘때 사진전을 위해 한국에 들렀다. 서툰 영어로 인터뷰하고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가 과장된 몸짓으로 응대해줘 편하게 사진 찍을 수 있었다. 엊그제 같은데 정말 시간은 상대적이다.
글·사진 곽윤섭 <한겨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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