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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편집장 편지] ‘난쏘공’ 라디오와 ‘기생충’ 수석

등록 2020-03-05 09:00수정 2020-03-05 11:01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었다. 하루하루의 생활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활은 전쟁과 같았다. 우리는 그 전쟁에서 날마다 지기만 했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 68쪽)

영화 <기생충>이 2월19일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감독·각본·국제영화상 부문 4관왕을 차지했습니다.

수상 장면을 보다 문득 <난쏘공>에서 난장이 첫째 아들 영수의 독백이 떠올랐습니다. 영수는 전쟁 같은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려고 인쇄소에서 일하면서 책을 잡으려 합니다. 방송통신고교 강의를 듣기 위해 라디오를 사러 갈 때 마침 여동생 영희도 따라가죠.

영희가 시장에서 먼지에 싸인 줄 끊어진 기타를 들어 퉁겨보는데요. 영수는 영희에게 기타를 사주는 대신 자신은 좀더 싼 라디오를 삽니다. 라디오는 ‘배움을 통해 잘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영수의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하지만 라디오는 고장 납니다.

디테일에 강해 ‘봉테일'이란 별명이 붙은 봉준호 감독도 영화에서 이런 상징을 심어놓았습니다. 기택(송강호) 아들 기우(최우식)의 수석(산수경석)이 그것입니다.

영화 첫 부분에서 기우는 친구한테 부잣집 과외를 부탁받으며 수석을 건네받습니다. 수석은 ‘부자와 가난한 자의 선과 냄새를 뛰어넘고 싶은’ 기우의 욕망을 디테일하게 보여줍니다. 수석을 받은 뒤 가족은 반지하 위로 올라와 잠시나마 다른 삶을 살죠. 하지만 기택은 끝내 수석을 물속에 내려놓습니다.

1978년 <난쏘공>에서 청년 영수는 고장 난 라디오처럼 꿈이 산산이 깨졌고, 40여 년이 지났지만 <기생충>에서도 젊은 기우는 내려놓은 수석처럼 희망이 가라앉는 듯 보입니다.

조세희 작가는 2008년 11월13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난장이’를 쓸 당시엔 30년 뒤에도 읽힐 거라곤 상상 못했지. 앞으로 또 얼마나 오래 읽힐지, 나로선 알 수 없어. 다만 확실한 건 세상이 지금 상태로 가면 깜깜하다는 거, 그래서 미래 아이들이 여전히 이 책을 읽으며 눈물지을지도 모른다는 거, 내 걱정은 그거야.”

봉준호 감독 역시 1월31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한국은 케이팝(K-Pop), 초고속인터넷, 정보기술(IT)로 겉으로는 매력적인 나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빈부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특히 젊은이들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난쏘공>과 <기생충>을 다시 보며 청춘들이 선을 넘고, 작은 공을 멀리까지 쏘아 보낼 수 있는 나라를 그려봅니다. 2월에는 여러 대학에서 졸업식이 열렸습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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